뉴스없는 세상
뉴스없는 세상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6.09.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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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로 이어진 긴 추석연휴가 끝났다. 전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9.12 경주 대지진 속에서도 추석 귀성객들은 고향을 찾았고 제주공항은 설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동안 뉴스는 하루도 쉬지 않았다. 어느 시인은 뉴스없는 세상이 가장 행복한 세상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표현대로 오늘 하루 참으로 평온히 지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런 세상은 과연 있기나 할지 자문하게 된다. 이처럼 뉴스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다. 뉴스 현장에는 늘 기자가 있고, 기자들은 한 줄의 기사를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스쿠프의 가치

기자에게 특종은 훈장과 같은 것이다. 평생을 기자로 살아도 특종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어 대단한 명예가 아닐 수 없다. 기자의 꿈은 특종이다. 그렇다고 매일 채워야 하는 지면을 두고 혼자 특종만을 쫓다가는 퇴직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언론의 특종을 가리켜 영어로 스쿠프(scoop)라고 한다. 스쿠프는 국물을 떠내는 국자라는 뜻이다. 특종은 오랫동안 푹 고아서 걸쭉하게 된 진국을 떠주는 사회의 국자 기능과 같다는 의미에서 차용됐다.

특종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스쿠프가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지만 왜곡된 사건을 폭로하거나, 이미 알려진 사실의 이면(裏面)을 파헤쳐 재조명함으로써 그 사실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밝혀내는 것이 사회가 요구하는 스쿠프라고 할 수 있다.

1992년 1월21일 전국이 깜짝 놀랄 뉴스를 동아일보가 터뜨렸다. 석간신문이었던 동아일보는 그날 낮 12시 1면 머리에 시커먼 제목으로 ‘대입학력고사 문제지 도난, 입시 2월10일로 연기’를 뽑았다. 불과 몇시간전, 그날 아침에 일어난 문제지 도난사건과 시험 연기는 경쟁사에선 전혀 감지하지 못한 동아일보만의 보도였다.

경쟁사들을 물 먹인 동아 취재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정답은 우연이었다. 정부종합청사 출입기자였던 동아기자는 전날 마신 술로 늦게 출입처로 갔다. 다른 기자들은 이른 점심으로 기자실을 비운 상태였고, 혼자 기자실에 남은 동아 기자는 총리실 주변이 매우 긴박하게 움직이는 이상한 느낌을 받고 취재에 들어갔다. 서울신학대학에 보관중인 학력고사 문제지가 그날 오전 7시40분에 도난, 대입날짜를 2월10일로 연기한다는 총리실 회의내용을 본사로 송고했다.

돌아가던 윤전기가 멈췄고 기사가 급히 교체됐다. 결과 동아의 단독 보도였다. 이날 저녁 김병관 회장은 ‘독립신문이래 한국신문 역사상 동아의 대특종’이라면서 광화문의 술집을 전세내어 편집국 전체회식을 가졌다고 한다.

 

속보와 특종

그러나 동아일보는 그해 기자협회에서 주는 한국기자상을 받지 못했다. 당연히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리라 여겼던 동아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탈락이었다.

그때 나온 한국기자상의 심사평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특종과 속보는 다르다. 특종을 스쿠프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아의 학력고사 문제지 유출은 특종이 아니라 속보였다. 몇시간 후면 공개될 정부의 발표내용을 동아가 앞서 보도할 것일 뿐 사회에 미칠 유의미(有意味)한 보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같은 해 부산일보가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노동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킨 수작(秀作)이라고 평했다. 부산일보는 노동부와 정보기관이 작성한 노동계 블랙리스트가 사업체에 은밀히 돌아다니고 있는 실체를 밝혀 노동법 개정을 촉발시켰다.

결국 뉴스는 현장에 있다. 어느 선배는 기자가 밤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면 직무유기라고 말했다지만 그 말의 의미는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경쟁사보다 앞서 보도한 것을 두고 특종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다. 안데스의 맹주 콘도르와 같은 예리한 눈과 긴장없이 특종을 얻을 수 없다. 자기열정이 있는 기자만 특종을 먹고 산다. 그래도 뉴스없는 세상이 가장 행복한 세상이다.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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