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가슴마다 휘영청
그리운 사람들 꼭 만나요
보름달 가슴마다 휘영청
그리운 사람들 꼭 만나요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6.09.14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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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졌던 가족이 만나는 날…기쁨 더하고 슬픔 나누고
세태는 변해도 그리운 사람 만나는 설렘‧반가움 ‘가득’

[제주일보=신정익 기자] 올해 추석은 그 어느 해보다 더 뒤숭숭한 가운데 맞나봅니다.

예서제서 풍성한 한가위라고 애써 띄워보지만 분위기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검은 청탁이 없는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른바 ‘김영란법’이 하필 추석을 쇤 후 시행된다고 합니다. 선물(膳物)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무슨 범죄라도 되는 양 눈치를 보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선물에 단지 정(情)을 담아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태가 됐습니다. 선물 얘기엔 반드시 ‘김영란법’이 전제가 되고 있으니 본말이 전도돼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흑심(黑心)이 없으면 선물(善物)인데, 괜스레 주눅 들게 한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이맘때가 대목인 농‧어가와 골목상권에서는 울상입니다. 엉뚱한 데로 불똥이 뜁니다. ‘그래도 추석인데…’ 하면서 장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추석장을 보기 위해 오일시장을 찾은 도민들은 껑충 뛴 장바구니 물가에 가슴을 쓸어내려보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제수용품이 비싸다고 조상님께 올릴 제물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하긴, 추석명절을 앞두고 제수용품 값이 내렸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으니 올해 추석도 그렇게 정성을 듬뿍 담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합니다.

#곤혹스런 여름 뒤 슬며시 온 가을

서양의 어느 시인은 가을을 맞으면서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제주의 여름은 그렇게 위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새벽까지 끈적끈적하고 후텁지근한 열대야가 7월 중순에서 8월 하순까지 무려 39일이나 계속되면서 도민들의 밤을 괴롭혔습니다.

땡볕과 가뭄으로 파종한 농작물은 싹을 내보지도 못하고 땅속에서 말라 죽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각종 채소류는 잎이 말라비틀어지는 등 생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제주바다도 신음을 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수온에 저염분수까지 밀려들면서 어민들의 속을 바짝바짝 태웠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이제 가을 문턱을 막 넘었습니다. 혁명처럼 올 것 같았던 가을은 밤도둑처럼 슬며시 오고 있습니다.

올 추석 차례상에 잘 익은 감귤과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잘 자란 채소를 맛깔스럽게 버무려 올려야 할텐데 이래저래 걱정이 앞선다고들 합니다.

#가족은 얼굴 맞대고 살 비비며 살아야

추석은 가족이 만나는 날입니다.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살을 비비는 것이 가족입니다. 그래야 기쁨을 더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만나지 못하는 이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걱정입니다.

취업이 어려운 아들, 딸은 가족들 보기가 미안해서 올해도 고시촌 쪽방에서 추석 같지 않은 추석을 보낼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컵라면으로 추석 끼니를 때우면서 설에는 달라질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지 모릅니다.

취업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들은 제주가 전국에서 가장 좋다고 나타내지만, 실상은 영 딴판입니다. 받고 싶은 월급과 주겠다는 월급 차가 너무 큽니다. 일하고 싶은 직종과 사람을 구하는 업종이 너무 달라 한쪽에선 취업난을 얘기하고 다른 쪽에선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남들이 알아주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잔뜩 주눅 든 청춘들은 가족들 보기가 미안해 명절이 부담스럽습니다.

세태가 변해서 혼자 지내는 것이 맘 편한 청춘들은 또 그들 방식대로 추석을 맞겠지요. 가족을 만나는 설렘이나 반가움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닌가 봅니다.

요즘은 혼자서 마시는 ‘혼술’, 혼자서 먹는 ‘혼밥’, 혼자만 보는 ‘혼영’이 유행이랍니다. 우리나라 4가구 가운데 1가구는 ‘1인가구’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제주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는 2030년에는 1인가구가 30%를 훌쩍 넘는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사는 게 바쁘고 고단해 마음 가는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리운 사람들을 추석 핑계로라도 꼭 볼 수 있기를 소망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족이 좋은 건 늘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반갑다’, ‘기쁘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가족의 얼굴이 그걸 얘기합니다.

올 추석에도 우리 어머니들은 바람 소리만 스쳐도 대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겠지요.

구름에 가려 추석에 한가위 보름달은 볼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휘영청 밝은 대보름달 하나씩 띄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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