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과 말(言)
정치적 중립과 말(言)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09.0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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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변경혜 기자] 여소야대 20대 국회가 지난 6일로 개원한지 꼭 100일이 지났다. ‘식물국회’ 비판을 받아온 19대 국회를 의식, 국회의장부터 초선의원까지 집권여당과 야당 모두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을 내놓기도 했다. 국회에서 만나는 의원들마다 공통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드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20대 정기국회 개원사에서 사드 배치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언급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을 해버렸다. 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을 점거까지 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민생 최우선’을 공언하며 추경예산의 통과가 시급하다는 ‘골든타임’론을 들이대던 여당이 추경까지 포기하고 정기국회를 파행시켰다. 정 의장의 개원사가 중립적이지 않아 국회법 제20조2항을 어겼다는 이유다. 친박-비박 간 갈등이 여전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날은 단결, 일사분란했다. 의사봉을 부의장에게 넘기고 유감표명을 해 이틀만에 봉합은 됐으나 여소야대의 20대 국회를 실감한 새누리당이 밀리지 않겠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란 분석이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정 의장에게 요구하는 ‘정치적 중립’을 행정부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은 공허해 보인다. 불과 한 달도 되기 전인 지난달 9일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제4차 전당대회에 당원자격으로 참석했다.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과 동시에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의 당원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박 대통령이 지난 4월 총선정국에서 내놓은 말들은 숱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의무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거수기노릇을 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불편부당과 중립의무를 부여하기 위해 2002년 3월 개정된 것임을 반추(反芻)해보면 여당의 주장은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다고 해도 말은 해야 한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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