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외교전문가' 접고 '다문화 청소년 멘토'로 변신
34년간 '외교전문가' 접고 '다문화 청소년 멘토'로 변신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09.06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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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김봉현 전 주호주 대사…유엔대표부 참사관·호주 대사 등 외교경력 '화려'
34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문화가정의 청소년 지원 활동가로 변신한 김봉현 전 대사가 다문화 지원 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주일보=변경혜 기자] 총성없는 전쟁터로 비유되는 외교무대에서 34년간 국제문제를 맞닥뜨렸던 김봉현 전 주호주 대사가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문화가정의 청소년지원활동가로 변신했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에서 조차 소외받는 다문화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이웃, 멘토가 필요하다는 그는 다문화 지원 정책프로그램이 현장에 맞게 제대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와 관련해서는 “반 총장이 결정할 사항”이라면서도 “아직 임기가 4개월 남은 만큼 퇴임 후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섣부른 예단을 경계했다.

다음은 김 전 대사와 나눈 일문일답.

▲30년 넘게 외교관으로 생활했다. 고위공직자들이 퇴임 후 산하기관에 재취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청소년 지원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외교관으로 30년 넘게 (국민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다. 직전의 호주대사로 있을 때만 해도 넓은 공관에, 운전기사가 있고. 모두 국민세금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서구 사회는 보통 70세 즈음 은퇴를 하게 되는데 아직 60대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해외 사례를 많이 접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다문화 가정에 대해 관심이 더 많이 갔다. 특히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가 자신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발전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홍보 사진에 나오는 지원이 아닌 아이들에게 진짜 기댈 곳이 필요하다. 그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거라 생각한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샘물교회 피랍사건 때부터 외교통상부에서 굵직한 일들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프간 피랍사건 땐 40일간 ‘피 말리는’ 나날들이었다. 재외국민보호 업무를 총괄하면서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사고, 소말리아 마부노호 피랍사건 등을 겪었다. 그때도 안타까웠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도 마련돼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2년 서울핵안보정상회의 교섭대표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교관들은 통상 그런 역할을 셰르파(She rpa)라고 한다. 네팔 같은 곳에 가면 산 정상까지 등반하는 산악인들을 위해 짐을 옮겨주는 현지인들을 비유한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 외교관의 업무다.

▲좋은 외교관 모델을 추천한다면?

-홍순영 전 외교장관이다.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지만 외교분야에선 원칙과 소신으로 정평이 나 있다. DJ시절 장관에 임명됐지만 청와대 실세들과 인사 문제로 껄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결국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사직했지만, 김대중 대통령께서 직접 요청해 주중대사로 다시 임명하기도 했다. 외교란 국가의 원칙이다. 5년마다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원칙이어야 한다. 향후 100년을 내다보겠다는 의지와 지혜가 있어야 한다.

▲반기문 사무총장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2001년 반 총장이 유엔총회 의장 비서실장이었을 당시 보좌관을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 반 총장은 어떤 사람인가?

-인연이 깊다.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연구원으로 있다가 외교부 공무원으로 처음 시작한 부서의 과장이 반 총장이었다. 유엔 과장이었는데, 유엔 대표부 발탁도 반 총장의 영향이 컸다. 함께 일한 경험으로 보자면 굉장히 판단이 빠르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부지런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잘 살피는 스타일이다.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반기문 총장의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선 출마는 반 총장이 스스로 결정할 사항이다. 아직 임기가 4개월 남은 만큼 퇴임 후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결정되지 않은 사항을 가지고 예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초등학교 때 서울로 가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5학년 때 아버지께서 서울로 발령을 받아 따라 나서게 됐다. 그런데 얼마 후 또 제주도로 가게 됐다. 그 땐 중학교 입학도 시험을 봐야 했다. 학교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함께 따라왔던 막내 여동생은 다시 제주도로 갔고 결국 혼자 서울에 남게 됐다. 친척집에 얹혀살기도 하고 자취도 하고 지냈다. 대학에 입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땐 대부분 그랬다. 그러다 3학년 때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휴학을 해야 했다. 영양상태가 정말 안좋았던 것 같다.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을 하라는 의사 권고로, 집에 갔는데 가족들의 어두운 얼굴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퇴임 후 제주를 자주 찾는 걸로 알고 있다.

-어머니가 90대이신대도 건강하셔서 좋다. 며칠 전에 제주도에서 모기물린 곳이 아직도 가렵다. 어릴적 무근성(제주시 삼도2동)에서 살던 때에도 모기에 많이 물렸었다. 제주 사람이 제주 모기에 물리는 건 자연스러운 거다. 작은 역할이나마 고향에 보탬이 되고 싶다.

▲다문화 청소년을 돕는 역할 외에 계획하고 있는 일은?

-30여 년 외교부에 몸담았던 일들을 기록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10년쯤 뒤로 미루려 한다. 지금은 열심히 직접 움직이며 에너지를 쏟고 싶다.

 

▲김봉현 전 주호주 대사는…1955생으로 제주북초등학교를 다니다 상경, 1979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1982년 외무고시(16회)로 외교부에 첫발을 내딛었다. 1996년 주 유엔대표부 1등서기관, 2001년 주 유엔대표부 참사관, 2006년 외교통상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을 거쳐 2008년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 2011년 외통부 다자외교조정관을 지내며 2012년 서울핵안보정상회의 교섭대표로 활약했다. 2013년 호주 주재 대사에 임명된 뒤 3년간의 임기를 마쳐 얼마 전 퇴임했다. 외교관에서 최근 다문화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단체의 시니어활동가로 변신했다. 외시 16회 가운데 가장 먼저 차관보급으로 승진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는 각별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서울=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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