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두동에 대한 예의
도두동에 대한 예의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6.09.0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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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도두동은 선친의 고향이다. 도두동은 비록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대(代) 까지 300여년을 살다가 4.3사건 당시 부친과 조부가 함께 난을 피해 탑동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도두동은 내게 고향이나 진배없는 곳이다.

도두동은 도두리라는 이름이 더 정겨운 곳이다. 도두동에는 지금도 가까운 혈친들이 더러 살고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오래물 근처에는 논밭이 있었고 늦은 제사가 끝나면 곧잘 묵었던 친척 집은 지근거리에서 콸콸거리는 오래물의 물소리로 선잠을 자기 일쑤였다. 새벽잠에서 덜 깬 얼굴을 그 시린 오래물에 씻고 아버지와 함께 제주비행장 고개를 넘어 등교를 재촉했던 것이 엊그제 같지만 벌써 오랜 시일이 지났다. 사수동 곁의 다끄네의 물은 왜 그리 차가운지 한 여름 보리밭의 목을 축이는 데에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지 지금도 도두동하면 애틋한 정부터 앞선다.

 

하수장과 비행장의 마을

그 정겨운 마을 곁에는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유래를 찾기가 어려운 하수처리장과 제주비행장이 늘 곁에 붙어 다녔다. 제주시 외곽지대인 도두동은 4.3 당시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의 접경지역이어서 낮이면 군경이, 밤이면 무장대의 세상이 되곤 했다. 그래서 비행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생매장을 당했고 무고한 사람들이 큰 피해를 봤던 4.3의 대표적인 피해지역이다. 집안의 장손인 조부는 목숨부지가 힘들자 선대의 입도지(入道地)를 떠나 다시 보재기(어부)의 삶을 이어간 곳이 제주시 탑바래, 지금의 탑동이었다.

당시에도 도두동을 관통했던 흘천에는 제주시 성안 사람들이 퍼다 버린 똥물들이 늘 고여 있었고, 그곳을 지날 때면 코를 틀어잡고 냄새를 떨쳐냈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도두동 사람들은 비행기 소음과 하수 냄새를 항상 달고 살아야 했다. 성안 사람들이 관광객의 숫자가 1000만명이 넘어섰다고 환호할 때마다 그들은 귓청을 때리는 비행기 소리와 폐부 깊숙히 인처럼 스며든 똥냄새를 매일매일 견디어야 했다. 누구처럼 제주의 푸른 밤을 우아하게 보고 싶어도 문을 열 수 없는 고통, 성안에 살고 있는 타 지역 사람들은 그 고통을 잊고 있는 게 아니라 모른 척 외면해왔던 것이다.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 의원들이 지난주 도두동을 찾았다. “우리는 도두의 ‘똥민’이 아니라 도두동민이고 싶다”는 현수막이 내걸린 도두1동과 신사수동 동민을 만났다. 오죽했으면 하수처리장에서 불어오는 악취를 직접 맡아보라는 체험천막까지 설치해놓고 도의원들을 기다렸던 주민들은 “제발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고통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먹고 입고 자는 일에만 신경을 썼다. 그 뿐. 우리들 몸에서 나온 하수와 쓰레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배설물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알고자 나선 이도 없었고 배출량을 줄이는 일에도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냥 행정이 알아서, 그리고 도두동 사람들이 감내해야할 숙명이라고 바라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도두동 주민들로 편의를 만끽하고 있는 만큼 그들에게는 그만한 대책과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해주는 게 도두동 주민들에 대한 고고(孤高)한 우리들의 최소한의 도리이자 예의이다.

지금 제주시 동(洞)지역에서 배출한 하수를 처리하고 있는 도두동 하수처리장의 하루 능력은 13만톤이다. 하루 유입되는 양이 벌써 한계치에 다달아 92%인 12만톤에 이르렀다. 만약 도두 하수처리장에서 손을 놓았다고 하면 우리 제주시 성안 사람들은 북한의 핵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재앙을 맞게 될는지 모른다. 들리는 바로는 제주시가 도두동 하수처리장에 4만톤 증설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허나 늘어나는 관광객과 유입인구를 감안한다면 앞으로 5~6년 후에는 또다시 지금과 같은 사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제주시가 쓰레기문제에 올인하고 있는 이때 도두동 사람들은 항공기 소음과 악취로 매일 고통받고 있다. 그 고통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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