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해수욕장의 ‘역설’
곽지해수욕장의 ‘역설’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09.0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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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물타기’ 요즘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나온 이 단어는 원래 경제용어(엄밀하게 말하면 주식투자기법) ‘scale trading’, 즉 구입한 주식이 하락할 경우 평균 주식매입 단가를 낮추기 위해 주식매입을 더 늘리는 것을 말한다.

이에서 보듯 물타기는 ‘물살을 타다’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물타기가 언제 부터인가 ‘물을 섞다’는 의의가 됐다. 즉 희석시킨다는 의미, 논점과 본질을 흐린다는 의미로 더 잘 통용되고 있다.

애월 곽지해수욕장 해수풀장 조성공사에 대한 제주도감사위원회의 감사결과를 놓고 말들이 많다. 전국공무원노조제주지역본부가 직접 나서 말단 직원들에게 부과된 거액의 변상금을 비난했다. 이어 원희룡 제주도지사까지 직원들에 대한 변상금 명령에 대해 ‘재심의’ 청구를 검토하겠다면서 감사위원회의 결정을 비판했다. 논란의 불판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공무원 노조와 원 지사 주장의 핵심은 감사위원회가 시정책임자인 시장과 부시장에 대한 책임을 이끌어 내지 못한 채 실무자들에게만 거액의 변상금을 물렸다는 것이다.

 

#본류 묻히고 지류가 판 흔들어

상황이 이쯤 되니까 이 사업은 왜 시작됐고, 왜 문제가 발생했으면, 유사사례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무엇인가 하는 이른바 ‘본류(本流)’가 사라졌다. 시장과 부시장 등 이른바 ‘윗선’은 봐주고 일선에서 업무를 처리했던 실무직원들만 당했다는 ‘약자동정론’이 급부상 했다.

말단 공무원은 언제나 ‘장기판의 졸’처럼 이용당할 대로 이용당한 뒤 버려진다는 일반의 속설이 현실이 된 것인 양 공직사회는 물론 도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본류가 묻히다 보니 곳곳에서 생겨난 지류(支流)가 판 전체를 어지럽혔다.

문제의 사업은 8억원의 예산을 들여 곽지해수욕장 한 가운데 해수풀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 사업이 왜, 누구에 의해 시작됐는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알려진 게 없다. 사업추진 중 법적 하자가 발견돼 공사 중단, 원상복구 조치됐다.

이 과정에서 예산이 낭비됐고, 낭비된 예산에 대해 변상명령이 내려졌다. 변상액은 담당 국장에게 8000만원, 과장·담당(계장)·주무관에게 각 1억2000만원이다. 시정책임자인 시장과 부시장은 제외됐다. 이 같은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일반의 정서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도 있다.

‘위선 봐주기’다. ‘과장 전결’로 처리한 사업에 대해 시장과 부시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공무원 노조와 도지사의 주장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행정청이 벌이는 각종 사업의 최종 책임자는 결국 조직의 장에게 귀결된다.

그런데 행정청이 발주하고 시행하는 사업에서 재정 결손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조직의 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실무 공직자 ‘장기판 졸’ 아냐

어떤 잘못된 결과만을 놓고 법적 근거 없이 특정인에게 책임을 물리는 건 죄형법정주의, 나아가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해결책은 현장과 법테두리 내에서 찾아야 한다. 괜히 이것저것 들쑤시면서 밖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면 이는 전형적인 ‘물타기’다.

곽지해수욕장 해수풀장 사업이 백지화 된 ‘2016년 제주공직사회’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일방적·종속적·수직적 관료조직이 아니다. 위에서 하라는 지시 하나에 꼼짝 못하고 움직이는 시스템이 아니다. 지방공무원법 제48조(성실의 의무)는 “모든 공무원은 법규를 준수하며 성실히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라고 이 규정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엔 더 엄격한 의무의 준수를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공직의 토대가 건강해진다.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장기판의 졸이 돼선 안 된다.

장기를 둬 본 사람은 알겠지만, ‘졸장’에 장기 끝나는 경우가 한두 판이 아니다. 행정에서 실무 공무원이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곧 책임행정이다.

위아래 차별 없이 공정하게 대접 받는 게 곧 정의다.

약자 동정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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