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 시대
수도꼭지 시대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6.08.2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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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김종배기자] 1971년 1월29일의 일이었다.

그날은 제주도민의 땀과 피로 일궈낸 일주도로 포장공사 준공식이 있던 날이었다. 일주도로 포장공사는 도민들이 등짐으로 모은 골재로 이뤄낸 대역사(大役事)였다. 제주도청(지금의 제주시청) 광장에 마련된 준공식장에는 동원된 주민과 공무원들로 가득 찼지만 이틀전부터 몰아닥친 한파에도 열기는 뜨거웠다. 일주도로 포장공사는 1962년 4월 제주시 관덕로와 동부두를 잇는 포장공사를 시발로 8년9개월만에 준공됐다. 주민들이 등짐으로 옮긴 골재는 26만3000톤에 달했다. 아들 지만과 큰 딸 근혜를 데리고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은 개통 테이프를 끊은 뒤 동회선을 따라 시주(試走)에 나섰다.

 

「水」자를 들고 시위나선 청년

박 대통령은 성산면 오조리를 지나 위미리를 통과할 때 20대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물 「水(수)」자라고 쓴 종이를 높이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청년은 박 대통령이 자기 부락을 지나갈 것으로 알고 이른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은 자기 부락에 물이 부족해 식수는 물론이거니와 농업용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그것을 대통령에게 알리기 위해 무언의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서귀포관광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박 대통령은 오후 7시쯤 권용식 제주도지사에게 농업진흥공사 직원을 오도록 했다. 박 대통령은 위미리 일주도로에서 「水」자를 들고 선 청년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제주의 지하수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나서 권 지사를 따로 불러 “제주도는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일주도로 포장공사가 완공된 만큼 제주도의 남은 문제는 지하수, 즉 물 뿐이다”고 말하고 지하수 개발에 주력해 식수난을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물은 섬의 생명수이다. 제주도는 지질학적으로 현무암과 조면암으로 이뤄져 있고 토양은 두께가 얇은 화산회토여서 물이 쉽게 빠지는 독특한 구조로 돼 있다. 연평균 2000㎜에 가까운 많은 비가 내리면서도 연중 물이 콸콸 흐르는 하천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암석과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면으로 솟아 나오는 용천수(湧泉水)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고, 용천수는 도민들의 귀한 생명수였다.

물허벅으로 길어 나르던 용천수는 이후 지하수를 이용한 상수도가 개발되면서 ‘수도꼭지 시대’를 맞이했다.

 

제주의 물 이대로 팡팡 써도 되나

제주지역의 연간 강수량은 37억6900만톤에 이른다. 바다로 직접 유출되는 양은 22%인 8억3300만톤이고, 공중으로 증발되는 양은 33%인 12억6000만톤이다. 그 나머지 45%인 16억7600만톤이 제주섬 밑에 있다는 지하수함량이다. 그 중 우리들이 쓰고 있는 양은 9.9%에 불과하다는 게 조사결과이다. 이 조사대로라면 아직도 제주도는 물을 팡팡 쓰거나 자손만대까지 물려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과연 그럴까. 물을 이대로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그리고 그 조사결과는 과학적으로 완전히 검증된 것일까. 제주섬 밑바닥에 고여 있는 지하수의 기껏 10% 밖에 쓰지 않는다면서도 그 많던 용천수는 말라 사라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짠물, 즉 염분침투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 어느 지역의 어떤 수맥이 어떤 방해를 받고 있는 지를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자료는 갖추고 있는 것일까.

섬에서 물을 파는 곳은 제주밖에 없다. 언제까지 물을 무한정 퍼올릴 수 있다고 보는 이는 없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요즘의 기후변화다. 물을 팡팡 써도 넘친다는 제주에 비가 두 세달만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답이 나온다.

제주는 섬이다. 제주섬이 수용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제주사람들의 삶의 질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수용능력은 반드시 조사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정책이 집행돼야 한다. 지금의 우리는 1971년 1월29일 당시 살을 엘 듯한 한파 속에 물 「水」자를 들고 거리에 나섰던 그 청년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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