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음’과 악덕 사이
‘좋음’과 악덕 사이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08.1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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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기자] 경제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펴들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이론이 ‘시장의 논리’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단순 논리다.

이어 접하게 되는 것이 ‘그레샴의 법칙’이다.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는 것이다. 시장에서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내몬 다는 의미다. 실질적 가치가 좋은 상품은 뒤에 밀리고 실질적 가치가 낮은 상품이 판을 칠 때 곧잘 이 이론이 등장한다.

최근 제주지역에선 상가 임대료 문제로 이 그레샴의 법칙이 재조명 받고 있다. 이 이론을 주창한 영국 경제학자 그레샴이 사망한지 400년이 넘은 지금 제주가 ‘비정상이 일상화 된 현실’을 맞고 있다. 상가건물을 가진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건물을 빌려주고 여기서 임대수입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한쪽은 한 푼이라도 많은 실리를 챙기려 하고 상대쪽은 한 푼이라도 지출을 줄이려고 한다. 이들 사이에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제주지역 부동산 광풍이 이들 사이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갈라놓고 있다. 어쩌다 상가 건물임대료를 적게 책정한 건물주가 나오면, 이게 뉴스가 된다. 좋은 건물주는 매우 드물어 뉴스거리가 되지만 임대료를 지나치게 올려 악덕 소리를 듣는 집주인은 한 둘이 아니어서 뉴스에서 조차 외면당한다.

 

#천정부지 상가 임대료 더는 안 돼

제주지역경제의 버팀목인 자영업자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가 임대료 때문에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제주 전역에 몰아치고 있는 부동산 투기 광풍에 급증하고 있는 중국인관광객에 편승한 일부 업종의 호황이 상가 임대료 인상으로 직결되면서 세입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상가 밀집지역에선 하루가 다르게 움직이는 상가 임대료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편할 날이 없다.

눈앞에서 임대료 분쟁이 벌어지고, 이 때문에 한쪽은 내쫓기고 급기야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결국 주저앉는 건 약자인 세입자다.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세입자들이 줄줄이 거리에 나앉고 있다. 그 영향은 자영업자 개인의 참담함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제주지역경제에 전반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가뜩이나 열악한 제주경제의 기본토양인 이들 영세상권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소상공인으로 대변되는 제주지역 영세 자영업자들은 도내 전체 기업의 80%를 차지할 만큼 제주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이들은 주로 도·소매업이나 편의점, 음식업, 서비스업, 유통업을 하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해마다 500만~1000만원씩 인상되는 임대료는 공포 그 자체다. 최근 서울 등 대도시 일부 초호화 상권지역에서나 나타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급등으로 원주민이나 영세업자들이 다른 곳으로 쫓겨나가는 현상)’이 제주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돈이 세상의 전부가 돼선 안 돼

최근 몇 년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에서 시작된 이 현상은 연동 다른 상가지역과 노형을 비롯한 신흥 택지개발지구, 제주시청 인근 대학로와 구도심권 아파트재개발예상지역 주변 등으로 번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건물을 빌려 장사를 하는 세입자에게 가장 큰 부담은 건물 임대료다.

아무리 손님이 많더라도 거둬들이는 수입금 가운데 절대적 부분이 임대료로 빠져나간 다면 영업을 하는 입장에선 의욕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세입자와 건물주는 같은 길을 가는 동료이자 동업자다. 나아가 상가 임대차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세입자와 건물주간의 ‘사적영역’으로만 치부해서도 안 된다. 왜냐면 지역경제의 버팀목 격인 영세 사업자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의 길로 등 떠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인 제주도는 이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나아가 명백하게 잘못된 행태에는 단호하게 대응할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이 사회는 이른바 갑(甲)으로 치부되는 소수 계층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고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는 분명 사회정의에 역행하는 것이다. 함께 가야하는 시대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돈이 세상의 최우선 가치가 되는 것은 모두에 불행이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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