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보따리를 풀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5.12.1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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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이십년 넘게 두 가지 일을 계속하고 있다.

‘상담과 강의’. 이 두 갈래 길 안으로 걸어가 보면 가정법원, 지방법원, 지원들, 개인상담센터, 보호관찰소, 지역아동센터, 대학교, 특강을 청해주는 여러 곳 등에 닿게 된다.

이렇듯 닿는 곳은 여러 곳이지만 결국 내가 하는 일은 어쩌면 한가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오늘은 서울가정법원 6층에 있는 상담실에서 이혼 소송 중인 부부·부모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놀잇감이 있는 놀이상담실에서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놀이를 모래 상자를 꾸미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했다.

사고로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 아이는 말없이 모래 상자에 동물들이 사는 세상을 꾸미면서 장독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그 안에 모래를 붓고 장독 뚜겅을 덮는다.

그 장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이야기 해 줄 수 있는지 묻자 한마디 말도 안하던 아이가 내 눈을 맞추면서 “이 장독 안에는 신비의 약이 들어 있어요. 동물들이 아플 때 이 약을 먹으면 살아나요”라며 대롱대롱 끊이지 않는 눈물을 쏟아냈다.

그 눈물이 모래 상자 안으로 흘러들어가 강물이 되어 흐른다. 아이 아빠가 엄마가 사고로 죽은 뒤 거의 말을 하지 않던 아이였는데 요새 조금씩 말을 한다고 했다. 아이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니 아빠가 “살 것 같다”고 했다.

법원에서 상담을 마친 후 전철을 타고 대학교로 이동하여 학생들과 종강시간을 맞이하며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학기 오랜만에 전공과목들을 잠시 쉬고 ‘결혼과 가족’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했는데 헤어지기 전 학생들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별반 기대 안했는데 재미 있었다”, “ 내 속의 내면아이와 친해져야 진정으로 통하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주 그 녀석과 만나고 있다”, “여자친구와 함께 들었는데 대박이다”, “요새 이상하게 화를 덜낸다”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야기? 이야기란 과연 무엇이기에 이렇게 나를 이십년이 넘도록 이 속에서 살게하는 것일까?’

이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어린시절 외할머니가 살았던 제주시 동문통 그 집이 생각나며 외할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렸을 때 내 기억으론 내 마음을 가장 따뜻하고 온화하게 어루만져 주었던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어린 내게 ‘참 따뜻한 분이다’라는 기억을 심어주었던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와 끄덕이는 고개짓을 하시며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셨다.

그래서 아마 나는 어려서부터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구나’라는 것을 알았던 듯 하다.

법원에서 만난 내담자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도 “선생님만 만나면 왜 그런지 눈물이 나요”,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저 다 들어주실 것 같아요”이다.

‘아! 동문통 외할머니 덕분이다.’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마음은 하나다. “내 이야기를 좀 들어줘!”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붓고 나면 그 무거웠던 몸과 마음, 영혼이 가벼워진다.

쏟아내고 난, 그 비워진 자리에 이제 생글한 에너지가 돌게 된다. 그 에너지는 싱글한 바람과 만나 초록 잎을 틔우게 된다. 성장하는 것이다.

이야기에 웃고, 울고 이야기에 살고 죽는다.

그래 이야기는 힘이다! 갈래갈래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후 차곡하게 쌓아 두었던 이야기 보따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그 이야기 보따리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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