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위한 길 걷는 법조인…"고향서도 역할 하고 싶다"
사회적 약자 위한 길 걷는 법조인…"고향서도 역할 하고 싶다"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08.09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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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현인혁 변호사…국내 15대 로펌 이끄는 '40대 기수'로 주목
40대에 국내 15대 로펌의 대표변호사로 활약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 현인혁 변호사가 그동안 자신이 맡았던 변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 변호사는 왕십리뉴타운 소송 당시 세입자들을 대변해 ‘백지동의서’ 문제를 파고들어 큰 성과를 냈다. 이 소송 이후 그는 재개발 전문 변호사로도인정을 받고 있다.

[제주일보=변경혜 기자] 변호사 60여 명이 소속된 법무법인(로펌) 한별을 이끌고 있는 현인혁 대표변호사(46)를 얼마 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하루 중 잠자는 몇시간을 제외하곤 일에 몰두하는 것으로 알려진 현 변호사는, 노타이에 두어번쯤 접어올린 셔츠 소매차림으로 여느 로펌의 대표변호사들의 여유있는 모습과는 달라보였다.

현 변호사에게 “방송 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고 농담을 하자 “어제도 사실 잠을 제대로 못자서…”라고 얼버무리면서도 “드라마는 화려하잖아요. 하지만 가끔 저처럼 멋스럽지 않은 변호사들도 나와서 좋습니다. 변론이라는 게 그렇게 말 몇 마디로 되는 건 아니고, 보통 서면으로 미리 제출하게 되는데, 그 서면이라는 것에 변호사의 고민을 온전하게 담아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합리적 근거들을 법적논리로 풀어내야겠지요. 드라마에선 배우들이 멋있게 얘기하지만, 현실에서는 변호사들의 고충도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40대에 국내 15대 로펌의 대표변호사가 된 이력을 물었다.

“20대 로펌을 기준으로 40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주도 촌놈이 머리 하나 믿고 열심히 했지요. 그 결과 외적으로 내적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성장에 기여했다고 인정받은 셈이라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로펌 경영이라는 게 법률적 측면과 경영적 측면, 두 가지를 다 고민해야 하는 자리라 쉽지는 않지요.”

대표변호사로서 로펌의 경영계획을 묻자 그는 “처음에는 변호사 100명 정도, 규모로는 10위권, 내용적으로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로펌으로 성장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15위 규모 정도가 되면서 내부에선 10위권으로 진입할 것이냐, 아니면 내실을 다질 것이냐를 놓고 고민이 있습니다. 다른 로펌인 경우 인수합병 등을 통해 몸집을 불리기도 하지만 자체성장을 해온 노하우가 있어 결정만 남겨놓은 상태지요. 우리의 경우 전체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을 하는 편이라 여유를 갖고 결정하려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중요한 건 로펌의 순위가 아니라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최고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의 변론을 위해 수차례 회의를 하고 어떤 논리를 만들지를 준비하다보면 길이 보입니다. 그런 로펌을 만들고 후배 변호사들에게 좋은 길잡이기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맡았던 변론들에 대해 물었다. 얼마전 그도 이름을 올려놓은 ‘동성 간 혼인신고’ 소송은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이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부부임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이었다. 약 2년간의 법률적 다툼이 있었으나 결론은 각하였다. 서대문구청 자문변호사인 그는 소송을 제기한 이들의 반대편에 서서 변론을 했었다.

“개인적으론 많이 안타깝습니다. 인권의 측면과 달리 민법에서 혼인은 남자와 여자, 이성 간의 결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다뤄진 첫 동성 간 혼인에 대한 법적 다툼이어서 치열했었지만, 법조인들 사이에선 예견됐던 결과이기도 합니다. 당사자들에게는 아픈 과정이었을 테지만, 이 사건은 동성 간 혼인에 대한 사회 관심을 집중시키는 계기가 됐고 앞으로 우리나라 법률혼이 기존의 제도를 유지할지 개정을 해야 할지, 사법부에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이후 수도권지역의 재개발에 대한 논란이 극심했을 때 이른바 ‘백지동의서’의 문제를 파고들었던 사건을 물었다. 당시 현 변호사는 왕십리뉴타운 소송에서 세입자들을 대변해 큰 성과를 내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도정법(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는 빈틈이 많습니다. 생활이 변화되면서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는데, 기본적으로 살고 있던 사람들을 다 내쫒아서 새로 도시를 만드는 거잖아요. 헌집을 내주면 새집을 주는 것처럼 사업이 시작되지만, 실제로는 살던 집을 내주고 쫒겨나는 상황이 됩니다. 예를 들어 조그만 다세대 주택에서 월세를 받아 생활하던 분들이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고 생활하려면 생계가 막막해져 갈등이 폭발하는 것이지요. 백지동의서가 위법하다는 논리는 사업을 막기 위한 법리 중 하나로 개발된 것입니다.”

막상 왕십리뉴타운은 백지동의서 논리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받아 대법원에서는 패소했지만 현 변호사가 제기한 백지동의서 문제는 여러 재개발 현장에서 조합설립무효의 논리적 근거를 제공해 이후 무더기 소송이 진행됐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재개발전문’ 변호사로도 인정받고 있다.

그나마 용산참사 이후 사회적 논란을 거쳐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도정법 문제는 아직도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현 변호사가 고교 입학 즈음 일화를 하나 꺼냈다. 고입시험인 연합고사를 보고 당시 값비싼 ‘오리털파카’(점퍼)를 선물받아 기분 좋게 길을 나섰는데,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먹다 남은 사과를 집어먹던 한 여자걸인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그는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저는 인권변호사도 아니고, 사회정의를 위해 대단한 철학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법이 약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작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조만간 제주에도 법인의 분사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그는 공익활동을 위한 고민도 조금씩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설명을 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40대에 중책을 맡다보니 불확실한 얘기를 하는 게 조심스럽다”며 “당연히 태어난 고향에서 역할을 하고 싶은 게 마음이지만, 아직 욕심을 얘기하기엔 준비가 부족하다”고 말을 아꼈다.

 

▲현인혁 변호사는…현인혁 변호사는 1970년 생으로 서귀포시 호근동 출신이다. 오현고(37회)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 서울대 법과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32기)을 수료한 뒤 2003년부터 법조인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국내 법무법인 15위인 로펌 한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40대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를 맡는 건 이례적인 일로 최근 관련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수도권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뉴타운·재개발 등과 관련된 소송에서 의미있는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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