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상생' 위해 서로의 아픔 품은 '괸당'
'화해와 상생' 위해 서로의 아픔 품은 '괸당'
  • 현대성 기자
  • 승인 2016.08.02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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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ㆍ3희생자유족회-제주도 재향경우회 합동 순례ㆍ참배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도 재향경우회는 ‘화해와 상생’ 선언 3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5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충정도 일원에서 합동 순례를 진행했다.

[제주일보=현대성 기자] 

[편집자주] 제주4ㆍ3과 관련해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반복했던 제주4ㆍ3희생자유족회와 제주특별자치도 재향경우회가 ‘화해와 상생’을 선언한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본지는 지난달 25일 충청도 일원부터 2일 충혼묘지와 제주4ㆍ3평화공원 합동 참배까지 이들의 합동순례에 동행하며 이들이 갈등의 골을 극복하고 화합과 상생의 길로 나가는 현장을 같이했다. 

▲아픈 과거 위에 서다
과거 속칭 ‘정뜨르 비행장’으로 불렸던 제주국제공항은 1949년 10월 4ㆍ3사건 진압군이 군법회의를 통해 사형선고를 내린 249명과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예비검속으로 연행된 500여 명이 집단으로 학살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참혹한 학살의 현장이었던 이 곳에 4ㆍ3사건으로 인한 갈등과 반목을 딛고 화해와 상생을 추구하기 위한 이들이 지난달 25일 오전 속속 모여들었다.

제주4ㆍ3희생자유족회(회장 양윤경ㆍ이하 유족회)와 제주특별자치도 재향경우회(회장 현창하ㆍ이하 경우회)가 ‘화해와 상생’ 선언 3주년을 기념해 합동순례를 떠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 3년, 이들은 서로 악수를 하며 안부를 전하고,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설렘을 얘기하고 있었다.

▲‘서로’의 아픔 아닌 ‘모두’의 아픔
청주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가진 오찬 자리에서 이들은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한몸이다” 등의 구호를 연신 외쳤다. 이들은 이미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유하기 위해 순례를 온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의 아픔을 돌아보기 위해 순례를 온 것이었다.

이들은 순례 첫날 충남 천안에 위치한 유관순열사기념관과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참배했다.

그 후 이들은 6ㆍ25 전쟁 당시 여순사건 및 4ㆍ3사건으로 인해 대전 등지에 수감된 재소자를 비롯해 70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됐던 대전광역시 산내 골령골을 찾아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이 곳은 정문현 전 유족회장과 이성찬 전 유족회장의 아버지가 묻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성찬 전 유족회장은 순례단에게 골령골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며 “이 곳 어딘가에 아버지가 묻혀 있지만 사유지라는 이유로, 토지주와의 협의가 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발굴 작업을 진행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잠 못 이루는 밤
지난달 26일 첫 일정인 노근리 평화공원으로 이동하던 중 버스에서 조승철 재향군인회 부회장은 “어제 산내골 어딘가에 아버지가 묻혀 있지만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그동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유족회 양성주 사무처장은 “한 지역의 경우회장이 경찰이 민간인을 학살한 장소에서 희생자에게 절을 올리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근리는 미군정 책임 규명됐는데 우리는
순례단은 노근리 평화공원을 둘러본 후 ‘제66주기 노근리 사건 현장 합동위령행사’에 참석해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을 위로했다.

노근리 사건은 미군이 6ㆍ25 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노근리 경부선 철도 일대에서 공중 폭격과 기관총 난사 등으로 피난민 300여 명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다.

양윤경 유족회장은 “노근리 사건의 경우 미군정의 책임이 규명되고 배ㆍ보상 문제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점을 볼 때 제주4ㆍ3보다 한 발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꿈’이 ‘현실’이 된 2박3일
2박 3일간의 주요 일정을 마친 이들은 지난달 26일 만찬 자리에서 여행에 대한 환담을 나눴다.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껴안았다. 순례단은 입을 모아 “예전 같았으면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껄껄 웃었다. 

어느덧 약속한 일정이 모두 끝나고 제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고승철 경우회 부회장은 “그동안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두 단체가 아름답게 섞이는 것을 보니 매우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순자 재향경우회 여경회장은 “앞으로도 이런 화합의 장이 계속 이뤄질 수 있도록 서로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양윤경 유족회장은 “화해와 상생으로 도민 화합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화답했다.

▲다시 만난 이들
이들은 2일 ‘화해와 상생 선언’ 3주년을 맞아 다시 모였다. 이 자리에는 순례에 함께하지 못했던 많은 유족회원들과 경우회원들이 함께 자리했다.  

이들은 제주 충혼묘지와 제주4ㆍ3평화공원을 찾아 순국선열과 4ㆍ3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시간을 갖고 앞으로도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갈 것을 다짐했다.

현경하 경우회장은 “앞으로도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가 도민들, 나아가 국민들에게 화해와 상생의 모범 사례로 남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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