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
영화 부산행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6.07.3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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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김종배 기자] 요즘 한창 뜨는 영화 ‘부산행’을 개봉 다음날 봤다. 평소 영화를 즐겨보지만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는 조금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잘 찾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영화 부산행의 관람은 ‘전설의 고향’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에서 뜬금없이 서양영화에서나 나오는 좀비영화를 제작했다해서 호기심반, 그리고 모처럼 갖게 된 여유있는 주말이 한 몫했다. 그런지 부산행은 평가가 엇갈리는 영화다.

부산행을 보면서도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2014년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했던 중국의 단편 실화영화 ‘버스 44’였다. 인터넷을 통해 봤던 버스 44는 사회의 무관심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아주 많은 것을 시사한 영화였다.

버스 44는 여자 운전기사가 모는 버스에 건장한 두 남자가 탑승하면서 시작된다. 강도로 돌변한 두 남자는 승객들의 돈과 물건을 강탈한 뒤 여자 운전기사를 숲으로 끌고 간다. 승객 중의 한 남자가 보고만 있을 거냐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승객들은 모두 외면한다.

 

중국영화 ‘버스 44’

남자는 혼자서 강도들에게 대항해 보았으나 심하게 얻어맞고 흉기에 찔린다. 강간을 당한 운전기사는 버스로 다시 돌아오고 다친 남자를 태우지 않은 채 차문을 닫고 떠나버린다. 산길을 걷던 남자는 낭떠러지에서 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고현장을 목격한다. 버스는 바로 자신이 탔던 버스였다. 여자 운전기사는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만 남겨두고 외면했던 침묵의 방관자들을 태운 채 전속력으로 달려 모두 지옥으로 데리고 갔던 것이다.

11분의 짧은 영화였지만 기억은 오래갔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경험하기 힘든 미지의 세계를,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산행은 좀비가 나오는 재난영화같지만 그 속에는 언제든지 가면을 벗고 민낯을 드러낼 수 있는 무수한 인간 군상들이 나온다. 내가 저 처지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라는 고민은 ‘버스 44’와 마찬가지로 ‘부산행’에서도 똑같았다.

부산행은 KTX라는 한정된 공간과 죽음을 눈앞에 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비열해지고 강해지는가를 보여준다. 어설픈 장면들이 더러 있었지만 시비할 대상은 아니었다. 다만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준 메시지를 가슴으로 새겨보는 눈이 필요할 뿐이다. 결국 영화는 자연의 가치를 무시하고 사욕에 급급한 인간에 대한 경고와 사회정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려고 했다.

요즘 한국사회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존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접점(接點)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영화 부산행처럼 끝을 봐야 끝이 날 것 같은 이상현상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티핑 포인트

한국사회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는 어디 쯤일까. 티핑 포인트는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는 시점으로서 어떤 것이 균형을 깨고 한순간에 전파되는 극적인 순간을 이르는 말이다. 티핑 포인트가 무너지면 자연은 자정(自淨)작용을 작동하기 마련이다. 영화 부산행의 좀비도 그러한 자연의 자정활동이며 인간에 대한 경고행위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질서이다. 내 생존과 안위를 위해서는 다른 이의 희생과 상처는 안중에도 없다.

영화 부산행 속의 천리마고속 상무와 같은 이가 상위 1%를 차지하고 있는 요즘에 보기드문 질서가 보였다. 그것은 지난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현장에서 나타났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마지막까지 힐러리와 치열하게 경합했던 샌더스 연방상원의원은 자신의 약점을 캐고 자신을 음해한 수많은 이메일들이 상대진영에서 나온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음에도 힐러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샌더슨은 자신을 지지하는 군중들을 향해 힐러리와 자신은 생각이 다른 것도 있었지만 결과에 승복한다면서 ‘그게 민주주의’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질서였다. 한국사회에서도 그같은 티핑 포인트를 보고 싶다.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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