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린’, 그리고 개꿈
‘꿈에 그린’, 그리고 개꿈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07.2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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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네만큼 꿈 해몽을 재미있고 다양하게 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개꿈’이다. 개꿈은 요약하면 ‘꿈속에서 특별하게 남는 기억 없이 잠에서 깨어나면 가물거리는 꿈’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런 개꿈을 꾸고 나면 대게의 경우 기분이 찜찜하다. 좋을 결말을 이끌어 내지 못한 아쉬운 생각에 기분을 잡치곤 한다. 그런데 제주에서 ‘개꿈’에서나 나올 법한 꿈결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다름 아닌 제주첨단과학단지에 들어서는 ‘꿈에 그린’ 아파트 분양비리다. 문제의 아파트가 들어선 첨단과학단지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출범 후 의욕적으로 추진한 제주국제자유도시 ‘7대 선도프로젝트’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다.

2004년 국가 산업 단지로 지정된 뒤 2005년 6월부터 단지 부지 조성 공사가 시작돼 2010년 6월 준공 됐다. 부지면적만 109만8878㎡에 이른다. 이곳에는 현재 IT·BT 관련 기업 및 연구소 등 100개 넘는 업체가 입주했다.

이처럼 원대하게 조성된 첨단과학단지가 입주자들을 위한 주거공간에서 수많은 비리와 불법행위를 키웠다. 첨단과학단지 내 기업 등이 입주할 산업용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때문에 준공 후 얼마 되지 않아 모두 팔렸다. 이와 비슷한 시기 제주시 아라지구 도시개발사업이 마무리 됐다. 바로 인접한 곳에 위치한 두 지역의 역할을 놓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이 중 설득력을 가진 게 첨단과학단지 입주직원들의 주거지를 아라지구로 옮기고 대신 첨단단지 공동주택 용지를 산업용지로 전환,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유치해 단지 효과를 극대화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시행자인 JDC는 이를 외면했다. 대신 공동주택 용지를 민간에 팔았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층수조정을 둘러싼 잡음과 수의계약으로 용지를 매각하는 과정에서의 잡음 등 파열음이 끊이지 않았다. 바람 잘 날 없이 이어져 온 파열음은 아파트 분양으로 까지 이어졌다. 당장 고분양가 논란이 불거졌다. 시민단체들은 대놓고 ‘뻥튀기 분양’이라고 비판했고, 이를 접하는 서민들은 끝 모를 좌절감과 박탈감을 느꼈다.

‘꿈에 그린’ 분양은 비리복마전이 됐다. 듯도 보지도 못했던 타지방 ‘떴다방’ 바람잡이들이 제철을 만난 듯 설쳤고, 이 틈을 노린 투기세력이 활개 쳤다. 결국 경찰이 분양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수사에 나서면서 소문으로만 나돌던 비리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민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박탈감이라는 대못을 박았다. ‘꿈에 그린’은 집 없는 서민들에겐 처음부터 ‘눈엣가시’가 됐다. 서민들은 경찰의 수사를 보면서 이번 기회에 분양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속전속결로 사건을 파헤쳤다.

위법행위를 저지른 26명을 적발했다. 경찰이 찾아낸 혐의는 이곳에서 얼마만큼의 불법이 판을 쳤는지 증명해 줬다. 물론 경찰이 찾아낸 게 비리의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찾아내지 못한 게 더 많을 수도 있다. 공인인증서와 사문서 위조는 다반사였고, 전입일자 위조, 심지어 임신하지도 않았는데 두 명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위조된 ‘쌍태아 임신진단서’까지 나왔다.

말 그대로 이쯤 되면 분양 비리 ‘끝판 왕’이 된 셈이다. ‘꿈에 그린’의 비참한 결말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경찰에 붙잡힌 이들 뿐만 아니라, 이 사업을 시행한 JDC와 그리고 인허가 과정에 개입했던 제주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꿈속에서 개에 물려 흉터가 생기는 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온다. 좋은 의미로는 본인이 하려는 일이 잘 풀려나가는 길몽이지만, 만약 개에 물린 흉터에서 피를 흘리게 된다면 흉몽이다. 불행과 행복은 이처럼 한순간에 뒤바뀐다.

‘꿈에 그린’은 말 그대로 화려한 도박판에서 일확천금을 기대했지만 막판 피를 보는 바람에 허망하게 끝난 ‘개꿈’이 됐다. 나아가 잘못하면 결국 책임을 져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 줬다. 그런데 그 평범한 교훈을 재확인하기 위해 이 사회는 너무 많은 힘을 소진했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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