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동에서 지지 않으려면
탑동에서 지지 않으려면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07.2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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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기자] 중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 가운데 한명이 마오쩌둥(毛澤東)이다. 마오쩌둥은 자신이 주도한 문화대혁명 때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사자성어를 즐겨 사용했다.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인 것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지난 잘못된 행태를 보면서 가르침을 얻는 다는 뜻이다. 제주신항만 개발사업과 관련, 파열음이 거세지고 있다. 두말 할 나위 없이 해안을 대규모로 매립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탑동 매립지 전면으로 현 탑동매립 면적 16만4252㎡(4만9686평) 보다 8배 정도 넓은 129만㎡의 공유수면을 매립해야 한다. 생태계 파괴가 뻔하다. 지방정부인 제주도는 사업비가 2조원이 넘는 대형 국책사업으로, 제주의 미래에 대비한 꼭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도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못해 냉랭하다. 1980년대 제주사회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탑동매립의 뼈아픈 역사를 닮아 간다.

제주신항 개발사업의 출발은 단순했다. 수년전부터 탑동해안에는 태풍 등 강풍이 불 때 마다 거대한 파도가 방파제 덮치고 일부는 매립지로 밀려들면서 안전사고 위협을 낳아다. 이를 막기 위해선 월파방지시설이 필요했다. 문제는 이에 따른 수백억원 규모의 사업비 조달이다. 제주시가 ‘묘책’을 찾아냈다. 국비지원이 이뤄지는 ‘그럴듯한 사업’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게 진화를 거듭해 현 제주 신항만의 밑그림이 됐다. 국비지원을 이끌어 내 탑동매립지 전면에 새로운 항구를 조성하면 자연스럽게 월파피해가 사라지게 된다. 지난해 제주도는 정부(해양수산부)에 제주신항만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것을 건의해 긍정 답변을 얻었다. 다음 달이면 정부의 국가항만기본계획에 제주신항만 계획 반영이 유력시 된다. 그런데 반발수위가 갈수록 드세 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정자립도가 30%정도 불과한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의 절대적 부분을 지원하는 중앙정부의 결정에 어깃장을 놓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특히 주민반발 때문에 국책사업을 포기한다면 더더욱 명분이 없어진다.

1991년말 매립사업이 준공된 탑동매립지. 매립되기 전 원래 이곳은 1~3.5m의 수심을 보였던 말 그대로 제주의 전형적인 해안가다. 힘들었던 시절 마을 주민들은 간조와 만조를 가지 않고 이곳을 찾아 해산물을 채취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는 이곳 부근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이른바 탑동 초가의 남녀노소들이 수영을 즐기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돌연 매립공사장이 됐다. 탑동매립은 탑동 앞바다 매립뿐만 아니라 제주시의 중심 녹지축을 이뤘던 병문천 마저 거대한 콘크리트로 뒤덮었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이뤄진 탑동 매립지역에는 공사가 끝난 지금 대규모 숙박시설과 대형마트, 식당가 등 상업 시설들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물론 해변공연장과 산책로, 청소년 쉼터 등의 공간이 있지만 이들 공공시설은 상업시설의 들러리가 됐다. 제주시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탑동해안이라는 자연자원이 특정 자본의 돈벌이 장이 됐다.

제주신항 개발에서 도민들이 보이는 반감의 기저에는 박탈감이 있다. 개발이 이뤄질 경우 현재 계획대로라면 현 탑동 매립지의 두 배 규모인 35만㎡에 육박하는 상업지역이 조성된다. 도민들의 공유하는 자연자산인 공유수면을 매립, 그곳에 특정 거대자본의 돈벌이 시설이 들어서면 이를 좋게 바라볼 사람은 없다. 결국 이 ‘상업지역 문제’를 풀어야 한다. 매립해서 생긴 모든 공간 중 항만시설에 반드시 필요한 면적을 제외하곤 도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면 그만이다. 사업비 조달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이는 실현 가능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방정부인 제주도가 이정도의 고민과 노력도 하지 않겠다면 이는 도민에 대한 배반이다. 지난 탑동매립의 잘못된 역사가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면서 제주사회에 이해를 구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도리가 아니다. 강정 해군기지, 성산포 제2공항, 이번에는 탑동에서 까지. 갈 길 바쁜 제주가 곳곳에서 발목을 잡히고 있다. 그것도 모두 자초해서. 지난 잘못에서 올바름을 깨우치지 못한 자업자득이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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