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誤報)
오보(誤報)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6.07.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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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8일자 ‘세상털기’에는 인간의 심리를 담은 ‘38인의 목격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올린 적이 있었다. 38인의 목격자는 심리학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방관자 효과’를 풀이한 내용이었다.

52년전, 28세의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뉴욕의 새벽 도심지 주택가에서 살해당했다. 주민 38명이 이를 목격하고서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아 처참하게 죽은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고, 후에 영화로 제작됐던 것은 현대인들의 무관심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었다. 나름 갈수록 삭막해져가고 있는 일상을 돌아보면서 키티 제노비스의 사건처럼 우리들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 묻혀버린 가슴 아픈 이웃은 없었는지 살펴보고자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1964년 3월14일자 미국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왜곡보도라는 것이 키티 제노비스의 동생 빌 제노비스에 의해 최근에 밝혀졌다.

오보(誤報)라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방관자 효과의 모티브가 됐으며, 미국 911 긴급전화 창설의 계기가 된 제노비스 살인사건은 뉴욕타임즈의 오보였다.

 

다시 쓰는 ‘방관자 효과’

빌은 2004년부터 이 사건을 추적한 결과 사건이 일어난 새벽 3시30분께에는 애초부터 38명이라는 목격자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 최소 2명의 이웃이 경찰에 신고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한 여성은 키티를 도와주기 위해 집에서 뛰어 내려왔고, 키티가 숨질 때 그녀를 안고 있는 사실도 밝혀냈다.

뉴욕타임즈에 기사를 올린 편집기자는 도대체 38명(처음에는 37명이라고 보도했다가 나중 38명으로 고쳐 게재하기도 했다)이라는 숫자가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고 질문에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론 오보의 역사는 길다. 독립신문이래 지금까지 언론의 오보는 일기예보처럼 신문과 방송에서는 일상처럼 일어난다.

1993년 10월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침몰,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사건의 선장 백윤두씨가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기사의 오보는 지금까지도 언론계에서 널리 회자되는 사건이다. 나중 침몰한 선박을 인양해서 보니 백 선장은 구조 요청을 위해 통신실에 있다가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언론오보는 독립신문 창간이후 지금까지 120년의 신문역사이래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이다.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새누리당의 이정현 국회의원이 청와대 홍보수석시절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 김시곤 KBS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보도개입 녹취론’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기자생활하면서 취재원이나 관련자로부터 보도청탁을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기사를 키워달라, 빼달라, 실어달라 등 기자와 취재원 사이의 밀당은 지금 이 시간에도 현장에서 계속 되고 있다.

 

보도통제와 통상업무

그러나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기관에서 들이대는 밀당이라면 청탁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이 수석은 전화에서 “그래 한번만 도와줘. 진짜.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이) KBS를 봤네. 아이고 한번만 도와주시오. 자~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진짜로”라고 말했다.

얼핏 들으면 읍소처럼 들리지만 그것을 읍소로 받아들일 기자는 없다.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권력처의 최측근 전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중 그 기사는 KBS뉴스에서 빠졌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 수석의 전화는 통상적인 업무협조요청’이라고 말했다. 사태의 중심에 있는 이정현 의원은 “사실관계가 다른 보도를 바로 잡는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만약 기사가 잘못된, 오보기사라면 대한민국 법률에서 의해 설립된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쳐 정당하게 정정요구를 하면 될 일이다. 한밤중에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기사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아무리 읍소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분명한 보도통제이자 간섭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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