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문제가 모든 문제의 본질…그게 새 패러다임"
"여성 문제가 모든 문제의 본질…그게 새 패러다임"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07.05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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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강금실 前 법무부장관…변화의 시대 '생명정치'·'여성정치' 화두 던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이 고문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원의 공익 활동을 위해 사단법인을 설립, 제주지역의 여러 단체들과 협약을 맺고 법률 지원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부의 많고 적음이나 권력의 있고 없음, 지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사람으로 존중받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받고 품위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오늘날 1퍼센트의 부자만이 부를 누리고 99퍼센트가 박탈감과 분노에 시달리는 사회가 된 것은 바로 천박하고 도착된 가치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정치’ 121쪽

2003년 2월 대중은 ‘홀연히’ 나타난 한 여성에게 집중했다. 아담한 키에 고운 외모, 당당함에 패션 감각까지 돋보이는 우리나라 첫 여성 법무부장관의 등장에 언론은 당시 연예계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효리를 빗대 ‘강효리’란 별칭을 만들어주었다. 요즘 내로라하는 아이돌가수 못지않은 인기다. 검은색으로 상징되는 법무부에 당시 제주출신의 40대 여성이 수장으로 임명되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서울시장에 나섰다가 쓴 맛을 경험하고 법조계로 컴백한 후 돌연 종교와 생태, 여성 등에 대한 주제로 공부하며 ‘생명정치’라는 화두를 던졌던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을 최근 서울 서초동의 법무법인 원에서 만났다.

강금실 전 장관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묻자 “지난해 2월에 제주에도 분사를 냈어요. 서울과 제주를 자주 왕래하고 있다”며 최근 관광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의 한 카페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두 해 전 강 전 장관은 법무법인 원의 공익 활동을 위해 사단법인을 설립, 제주와 서울을 바지런히 다니고 있다. ㈔제주올레와 업무협약을 맺었고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등 제주단체들과 협약도 체결해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도 사회적 경제와 여성, 아동 인권, 기후 변화 등에 대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에서 공익 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녀는 “저야 물론 고향이 제주도니까”라며 “공익 활동은 사단법인이 하고 로펌이 법률 지원을 할 수 있고, 자꾸 찾게 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지난해 초에 제주 분사 결정을 하고 거의 동시에 제주4·3평화상이 제정되면서 심사위원을 제안받았다. 올 가을에도 내년 수상자 선정을 위한 작업을 한다. 제주국제대에서도 지난 5월에 강연했었다. 이런 계기 하나하나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법무부장관을 지낸 뒤 궁금했던 여러 행적들을 묻자 “책에 다 썼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녀는 장관 퇴임 후 정치 활동에 나섰다가 돌연 ‘법’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연이어 책을 세 권이나 펴냈다.

그 가운데 자신의 성지순례기를 담은 ‘오래된 영혼(2011년)’에서 그녀는 ‘지난 몇 해, 사람들에게 정치인으로 인식되면서 다시 변호사로 돌아온 후 자리를 잡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고 고백,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후 순식간에 지나간 몇 년의 시간이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다시 정치권에 진입할 의향이 없는지, ‘밖에서 바라본 정치현실’에 대해 일침을 날렸다. “‘비정상의 인기’가 문제였다. 정치는 여러 분야를 종합하고, 조정능력과 타협, 노련함이 필요한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이다. 정치를 욕하면서 인지도가 높다고 대통령 후보 되는 건 이상한 거다.”

그녀가 안철수 바람, 현재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이름을 꺼내며 고배를 마셨던 서울시장 이야기를 꺼냈다.

“장관 취임 때에는 ‘검찰 경험이 없고 어리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할 수 있을 거란 결심이 섰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설 땐 장관 때보다 훨씬 더 길고, 깊은 고민을 했다. 나의 결정이었지만, 나보다 주변을 더 고려했던 선택이었다. 잘한 선택인가에 대해선 국민들에게 ‘잘못된 선택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을 최근 했다. 실천적 가치가 높은 일일수록 본인의 결단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왜 ‘생명정치’, ‘여성정치’라는 화두를 던졌는지 묻었다. 그녀는 ‘생명의 정치(2012년)’에서 변화의 시대 방향을 여성을 통해 안내했다. “기본적으로 여성문제가 모든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을 그대로 적용해 여성장관을 50% 임명했다. 의사결정권 자리에 여성이 가야 제도와 정책이 바뀐다. 그게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여성리더들이 50대 50으로 구성되면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될 수 있다”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발표된 한국여성의 지위와 관련된 통계들을 꼼꼼하게 살펴볼 것을 조언했다.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GGI)에서 우리나라는 2015년 기준 145개국 가운데 115위다.

그녀는 또 “그런 의미에서 제주여성들이야말로 대단하지 않느냐”며 “만약 내가 아들이란 이유로, 딸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고 살았다면 표출됐을 것이다.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고 제주의 그런 열린 문화, 대체로 제주도 부모들이 자연스레 보여준 삶의 태도들이 제주여성들에게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제주가 ‘특별자치도 출범 10년이 된다’는 말에 그녀는 유엔이 2030년을 목표로 환경과 사회, 경제를 아우르는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경주에선 국내 대형기업이 추진하는 복합쇼핑타운과 생태공원 건립을 놓고 충돌이 있었는데, 결국 생태공원으로 결정을 내렸다. 10여 년 전이면 분명 복합쇼핑타운을 선택했겠지만 이젠 보존을 위한 발전이다. 기후 변화, 물, 식량 등 주요 의제를 가지고 169개 세부목표를 위해 환경과 사회, 경제, 문화 등을 아우르는 17개 목표를 세웠다. 자연을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제다. 제주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이냐는 질문은 이미 경제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제주는 강력한 특성, 그걸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을 찾는게 필요하다. 대단히 창의적인 길이 나올 것이다.”

 

▶강금실 前 법무부장관은…1957년생으로 제주출신이며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1983년 9월부터 1996년까지 서울고등법원 판사(사법연수원 13기) 등을 재직한 후 강금실 법률사무소를 개업하고 변호사 일을 시작해 2000년 4월부터 법무법인 지평 대표로, 첫 여성 로펌대표를 맡았다. 2001년 5월부터 2003년 2월까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 2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우리나라 첫 여성 법무부장관을 지낸 뒤 2006년 열린우리당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나섰으나 낙선했다. 2008년 1월부터 7월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는 등 정치권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2008년부터 법무법인 원의 고문변호사다. ‘서른의 당신에게’, ‘오랜된 영혼’, ‘생명의 정치’ 등의 책을 썼다.

서울=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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