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그 안으로
초록, 그 안으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07.05 1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신 수필가/덕수초등학교장

산하가 온통 초록이다. 비가 그친 후라 운동장의 잔디와 산방산도 더욱 푸르게 보인다. 나뭇잎에 떨어진 빗방울이 초록으로 흐르더니, 지금은 윤기가 흐른다.

싱그러움과 깨끗함이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나무는 장맛비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비는 갈증을 해소해주고 먼지를 씻어주는 고마운 존재일 뿐이다.

얼마 전 중국의 장가계를 다녀왔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 이 삼림공원은 누구나 한 번쯤은 다녀와야 한다고 입소문이 난 곳이기도 하다.

천문산과 원가계를 둘러보고 우거진 숲과 기암절벽위의 초록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 곳은 온통 초록이었다. 그것도 짙고 푸른 힘이 넘치는 태고의 초록이었다. 원시림이 거대한 기암괴석을 품고 있었다. 초록이 기암괴석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보았을 때 초록이 없어서 황량함을 느낀 적이 있다. 그에 비하면 장가계는 살아있는 생명의 땅이라고 할 만하다.

초록의 푸름에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다.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기까지의 굴곡을 견뎌낸 끈질긴 생명력을 나는 초록에서 본다. 주어진 자리에서 뚝심 있게 성장하는 초록의 생명력은 인간을 뛰어넘는다.

초록은 삶이 힘들다고 스스로 생명을 끊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는 살려고 바위에도 뿌리를 내리는 것이 초록의 근성이다.

초록에는 희망이 숨어있다. 녹음이 그 빛을 잃어가며 붉은 잎으로 떨어지고, 나목이 되어 황량한 겨울 한복판에 서 있을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언젠가 싹을 틔우고 다시 초록으로 부활하는 꿈, 열매를 맺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때를 기다릴 줄 안다. 깊은 땅속에 묻힌 작은 씨앗마저도 초록의 꿈은 포기하지 않는다.

초록의 세계는 상생의 세계이다. 나무들은 위를 보면서 자라지만, 나무 밑에 나무가 자라고 온갖 풀이 자라는 것은 그들 세계에서 상생의 원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나무를 죽이지 않고 풀이 다른 풀을 못살게 하지 않는다. 다른 덩굴이 자기 몸을 타고 올라와 하늘을 보게 해주기도 한다. 비록 나와 다른 종류의 풀일지라도 함께 자라며 꽃을 피운다.

사람이 초록의 세계를 닮을 일이다. 장가계의 원시림도 기암절벽을 품고 그 기암괴석은 자신에게 뿌리내린 나무를 살려서 더욱 위대한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나온 삶이 참 힘들었다고 여겼었는데, 맨 바위벽에 뿌리내린 나무들을 보니 복에 겨운 투정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원가계의 숲 터널을 걸으면서 태고의 신비스런 초록세상을 보는 일은 경이로웠다. 그 길을 걸으면서 몇 년 전 경주에 갔을 때처럼 한 남자를 생각했다.

토함산 주차장에서 석굴암까지의 길은 신록의 숲 터널이었다. 땅은 이슬방울을 머금어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간간이 비친 하늘은 또 다른 무늬를 만들고 빛을 쏘았다.

토함산의 아침 분위기 탓이었을까. 그 길을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데 그렇게 정겹고 평화로울 수가 없다. 단지 내 옆에 그 남자가 없다는 것 만 빼고 모든 게 완벽했다.

수학여행 온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걸으면서 내내 그 남자를 생각했다. 손잡은 사람이 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신록은 이렇게 사랑의 열정을 불러오기도 했다.

삶에 대한 열정도 초록에서 온다. 모든 식물이 초록을 잃으면 그때는 열정도 식는 것이다. 나에게 초록은 열정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