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벗은 굴레...故 강우규씨 등 간첩 누명 벗어
40년 만에 벗은 굴레...故 강우규씨 등 간첩 누명 벗어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6.06.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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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77년 중앙정보부 고문 조작 '재일교포 사업가 간첩단'사건 피해자 무죄 확정

1977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의해 조작된 ‘재일교포 사업가 간첩단’사건의 피해자인 제주 출신 고(故) 강우규씨(1917년 출생, 중문 출신) 등 피해자들이 약 40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대법원은 북한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기밀을 탐지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강씨 등 6명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1978년 2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돼 사형선고를 받은 후 재심절차를 거쳐 38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지만 수사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억울한 옥살이까지 한 강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1977년 3월 24일 본지(당시 濟州新聞)를 비롯한 국내 언론이 보도한 중앙정보부 수사 발표 내용에 따르면 강씨(당시 60세)는 16살에 일본에 건너갔다가 ‘북괴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45년 만에 국내로 잠입했다가 검거됐다.

강씨와 함께 동생 용규씨와 제주교대를 설립하고 1・2대 학장을 역임한 김문규씨, 당시 현직 국회의원이었던 현오봉 의원이 비서인 이오생, 김추백씨 등 제주출신 10명이 함께 붙잡혔다.

중앙정보부로 끌려간 뒤 계속된 구타와 전기고문, 물고문에 못 이긴 강씨는 중앙정보부가 불러준 대로 일본에서 북한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간첩활동을 위해 국내로 잠입했다고 인정했다.

강씨의 동생과 동료들도 강씨에게 포섭돼 간첩활동에 대한 활동비 등을 제공받았다고 진술했다.

이후 재판에서 강씨 등은 고문에 못 이겨 혐의를 인정했다며 진술을 번복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형사지법은 1977년 6월 강씨에게 사형, 동생 용규씨 등 10명에게 징역 3년~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강씨를 제외한 피고인들의 형량이 감형됐지만 강씨의 사형선고는 1978년 2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강씨는 11년 동안 복역하다가 1988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일본으로 돌아간 후 2007년 사망했다.

강씨와 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연은 동생 용규씨 등이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했다”는 진실규명 조사결과를 받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에 있던 강씨의 유족들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나머지 피해자들과 함께 법원에 재심신청을 냈고, 대법원은 2013년 11월 “불법체포와 감금, 고문으로 죄를 인정했다”는 이유로 서울고법에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2014년 12월 서울고법 형사6부는 재심에서 “피고인들의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며 전원 무죄를 인정했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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