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맞춤
입술맞춤
  • 제주일보
  • 승인 2016.06.1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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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제주도문인협회ㆍ회장

입술맞춤이 있다. 양복맞춤, 구두맞춤도 있고, 좋은 년 월일 탄생을 위한 시간맞춤도 있다. 입에 관련된 행위를 입맞춤으로만 단정하기보다는 입술맞춤도 있음을 이참에 알아두자.

입과 입이 입술이나 혀로 만나는 것이 입맞춤이므로 입과 입 아닌 것이 만나는 것은 입술맞춤인 거다. 예를 들자면, 발에 하는 입술맞춤은 헌신을, 이마에 하는 입술맞춤은 우정을, 뺨에 하는 입술맞춤은 감사를, 눈에 하는 입술맞춤은 희생을. 목에 하는 입술맞춤은 욕망을. 귀에 하는 입술맞춤은 정열을 나타낸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부위에 하는 야릇한 입술맞춤도 있다. 그러니까 입술과 입술이 잠시 붙어서 일그러져야만 입맞춤인 거다. 그것도 사랑을 의미하는 입맞춤이라야 올바른 키스인 거고, 입술맞춤은 입맞춤을 흉내 낸 ‘립 터치’인 거다.

나처럼 입술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면 아름다운 입술을 가진 여인에게 환심을 사려고 ‘그대 입술, 내 꽃잎’이라고 시의 행간을 메우거나 ‘여자의 입술은 초인종이다. 왜냐하면 뜨거운 바위가 열리니까’ 엉큼한 시를 한 편 쓸 수도 있는 거다.

군중을 이끌고 복음의 땅에 들어선 선지자가 감격한 나머지, 땅에 엎디어 입술을 흙에 묻게 대는 것도 입술맞춤이고,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수가 여왕의 손에 입술을 대는 것도 존경을 의미하는 입술맞춤이다.

크게 죄를 지어 중죄인이 된 공범 둘이가 법정으로 들어서기 전에 진술할 내용을 의논했다. 알리바이를 위한 사전 조작임에도 둘이 입을 맞추었다고 방송했던 적이 있다. 구태여 따질 것도 없이 둘이 입을 맞춘 것이 아니고, 말을 맞춘 거다.

대상 대회에서 우승한 경주마가 대견하다고 땀 흘리고 있는 말의 볼따구니에 입술을 퍼부어도 입을 맞춘 것이 아니고 입술맞춤을 한 거다. 이것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서는 의기양양하게 입술로 금메달을 핥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인 경우다. 골퍼가 우승컵에 입술을 대었다가 들어 올리는 경우 또한 같은 맥락이다.

입맞춤은 사랑하는 연인끼리 해야 정상이다. 눈이 부셔 절로 눈 감은 입맞춤은 입술이 서로 맞물려 두 입술이 보이지 않아도 긴 머리와 짧은 머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서로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한 쪽이 하기 싫은데도 겁탈 비슷하게 강제로 하는 입맞춤은 모양은 입맞춤이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입술맞춤인 거다.

절박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입술맞춤도 있다. 바로 인공호흡이다. 물에 빠져서 사경을 헤매고 있거나, 연기에 질식해서 혼수상태에 있는 경우, 비록 사랑하는 사이가 아닐 지라도, 반드시 남녀라야 된다는 상식을 따질 형편이 아니기에 구급차가 올 때까지 다시 숨을 쉬게 하고, 맥박이 뛰게 하려면 충격요법인 가슴마사지도 소용없다 판단되면 입술을 벌리고 입을 대서 숨을 불어넣어야 하므로 이 경우는 입맞춤이 아니고 응급처치를 실행하는 심폐소생술이다. 아무튼 입술맞춤이라는 말은 내가 조립한 단어이다.

제주일보 기자  startto@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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