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작가의 모태는…“제주 정체성에서 비롯”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의 모태는…“제주 정체성에서 비롯”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06.07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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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박형근 사진작가…北 사회 다룬 ‘두만강 프로젝트’ 작품, 프랑스 국립박물관서 전시
박형근 사진작가 인터뷰 사진

해외에서 이름을 먼저 알린 박형근 사진작가를 최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일년에 1~2차례 개인전을 하는 ‘부지런한 작가’로 손꼽히는 그는 상업사진의 유혹을 물리치고 묵묵히 예술사진의 길을 모색해온 작가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역사와 철학, 사회학, 커뮤니케이션 등을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사진학의 장점”이라며 “뒤늦게 찌그러진 카메라가 사진과의 인연을 맺게 해줬다”고 ‘사진’의 묘미를 이야기했다.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리는 박형근 작가는 카메라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첫 질문을 던졌다. “제주에서, 애월 촌에서 자랐습니다. 텔레비전도 귀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그냥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 학교에서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 좀 받던 아이였지요. 그냥 그렇게 자라다가 정말 뒤늦게 21살에 카메라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2남3녀 중 장남이었는데 작은 매형 친구분이 카메라를 하나 줬어요. ‘멍’하니 혼자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렌즈 앞부분이 찌그러진 카메라였는데 그걸로 시작했습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어릴적 얘기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이번 달에 제사 있는 사람?’하고 물었는데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어요. 그때가 4월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제 입에서 ‘4·3’이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달려와 ‘속솜허라(조용히 해라)’고 주변을 살폈던 분입니다. 광주에서 사진학과에 입학한 후 1980년 광주 5·18을 현장에서 겪었던 기자들이 저에게 인화와 현상을 부탁했었어요. 본인들은 너무 참혹해서 차마 작업을 못하겠다고 하면서요.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큰 충격이었지요. 그때 오리지널 원고들을 다 보게됐고 그 수백장의 사진들이 지금 5·18재단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대단한 역사인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환경과 경험이 영향을 끼친거지요.”

30살 늦깍이 유학생활을 결정한 이유를 물었다. “20대에 떠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제주에서 살 때는 제주를 벗어나고 싶었고 광주에서는 우리나라가 답답했죠. 그래서 무작정 유학을 떠났습니다. 제가 입학한 대학이 그렇게 유명한 학교(영국 런던의 골드스미스 컬리지, 유럽의 명문대로 손꼽힌다)인 줄도 몰랐고 영어도 제대로 준비 안하고 현지에서 어렵게 시작했습니다. 그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졸업하면서 운좋게 영국에서 개인전 기회를 얻게 됐어요. 그땐 그 미술관이 그렇게 유명한 줄도 몰랐습니다.”

골드스미스 컬리지를 수석졸업한 후 2006년 그가 첫 개인전을 연 영국 뉴아트 갤러리 워셜미술관(The New Art Gallery Walsall)은 1892년 개관, 영국에서도 전통을 자랑하는 곳으로 한국인으로선 그가 첫 전시를 열었다.

그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게 ‘행운’이라며 “제 선생님이고 미술사평론가인 이안 제프리가 전시회 서문을 써 주셨는데 한국, 아시아(동양) 사람의 철학(세계관)이 우주를 품어내는 방식이 독특하고 (유럽과 다른) 통찰력이 있다고 평가해주셨다. 아마 ‘1만8000 신들의 고향’인 제주사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정체성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21세기 현재의 명확한 시점을 담고 있으면서도 몽환적이고 비논리적인 시대를 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근래 그의 작품 배경인 경기 남부의 시화호 또한 간척사업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지형과 공간이지만 그는 “(첨단과학의) 지도와 첨단GPS로도 포착 불가능한 모호한 허상 같은 공간”이라고 규정짓는다. 갯벌이 사라진 곳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과 파괴된 생태계위에 음식점, 위락시설, 자동차와 발전소들이 즐비한 현재의 모습은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연결짓는 ‘다리’임을 강조한다. 지난해 프랑스 국립미술관 소장품이 된 그의 ‘두만강 프로젝트’ 작품도 21세기 자본주의와 두만강 건너 북한 사회의 비자본주의를 한 장에 담은 현재의 모습이다.

곶자왈에 관심을 기울여온 그는 “곶자왈도 환경이나 보존의 가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적돼 있는 삶의 역사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키는 방식도 중요하다. 자꾸 담론화 시켜내는 게 필요겠지요. 7월에 ‘센세이션 포토그래피’라는 전문사진집이 나오는데 1999년부터 담아내고 있는 제주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실립니다. 제 작가노트에 ‘제주도를 찍었는데, 제주도가 없다’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안타깝다”라고 말한다.

제주의 문화정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전하는 그는 “문화행사에 치중하는 경향들이 많은데, 문화예술가들이 자존감을 갖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정책이 정말 필요하다”며 “시대적 담론을 형성하는 작가들의 창작공간, 전시공간들이 다른 지역에서 어떻게 정책화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유명한 아이돌 그룹 ‘빅뱅’의 G-드래곤과 ‘피스 마이너스 원’에 10명의 협업작가로 참여했던 일을 얘기하며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전한 뒤 “유혹에 빠지기 쉬운 불혹을 넘겼는데 녹슬지 않기 위해 계속 작업하겠다”고 전했다.

 

▶박형근 사진작가는…제주시 애월읍에서 태어나(1973년) 제주제일고를 졸업했다. 광주대학교 사진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30살 뒤늦게 영국 런던으로 유학길에 올라 골드스미스 컬리지 소속 시각미술대학원에 이어서 MA 이미지&커뮤니케이션을 전공, 수석졸업했다. 2006년 영국 뉴아트 갤러리 워셜 미술관의 초대 개인전으로 유럽에서 이름을 먼저 알렸고 국내에선 금호미술관 등 14차례 개인전, 단체전으론 110여 차례 이상 참여했다.

2010년 국내에서 사진영상의 권위를 자랑하는 제9회 다음작가상을 수상했고, 2014년 비유럽사진작가 3명을 지원하는 프랑스 케브랑리미술관의 포토케이레지던시에 선정됐다.

서울=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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