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지금, 여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06.0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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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제주에 사는 막내가 엄마를 모시고 영화를 봤다는 소식을 전해왔다’는 문장을 치는데 벌써 눈물이 고인다.

엄마 생각을 하면 이렇게 코끝이 찌르르 거리며 눈이 더워온다.

세상이 둘도 없이 사이가 좋으셨던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신 후 혼자 계신 엄마는 매일 매일을 슬픔 속에 지내신다.

게다가 마음이 그러시니 몸도 극도로 쇠약해 지셔서 약도 많이 복용하고 계신다.

엄마의 이런 모습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엄마의 불호령이 무서웠던 어린 시절의 어린 나는 “엄마 미워”를 많이 외쳤었다.

엄마가 아프신 지금, 그 어린 시절에 가졌던 엄마에 대한 마음이 떠오르면 그때로 돌아가 “엄마 미워”그 말을 ‘완전 취소·절대 취소’ 버튼을 눌러 취소하고 싶다.

지금 엄마는 한쪽 시력도 거의 없으시고 한쪽 다리도 많이 불편하시다.

병원에서 지내기도 하셨고 지금은 집에 계시는데 혼자 외출은 무리다.

쇠약해진 몸의 기능도 걱정이고 더욱 약해진 마음 때문에 우울해 계실 때가 많다.

타지에 사는 첫째인 나와 둘째인 남동생에 비하면 제주에 살고 있는 막내 동생이 아빠 돌아가실 때, 엄마가 아프신 지금 제일 고생을 하고 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이루 다할 수 없을 만큼…

그래도 한번 막내가 어렵사리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가끔 무서워 언니, 언니와 오빠에게 제주에 있는 내가 가장 고생이라고 난 막내인데 왜 이런 저런 일을 내가 다 해야 하느냐고 투정 부릴 때 있지만 실은 제일 힘든 마음이 무서움이야. 금슬 좋았던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엄마 빨리 부를까봐…”

그러면서 막내가 울먹였었다.

그때 나는 동생에게 “많이 무섭지, 그래 나도 그런데 가까이 있는 너는 오죽할까.

그래도 네가 없었으면 어찌했을까. 말해도 갚지 못할 고마움을 이렇게 그래도 말한다.

정말 고맙다” 그 말은 그냥 할 수 있었던 말은 아니었다.

그것은 둘째 동생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둘째는 자신의 일을 하는 중에도 어떻게든 짬을 내서 가족들을 돌본다.

기가 막힐 정도다.

동생의 별명은 “강 산타”이다.

그 동생이 경제도 시간적인 여유도 없어 허덕이며 실제 첫째의 역할을 잘 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 나에게 말했었다.

“누나!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그 날도 바쁜 짬을 내서 아버지를 보러 갔다가 아버지에게 물었어.

아버지는 이 세상 누가 가장 예쁘냐고.

난 은근 기대했지. 이렇게 바쁜 짬을 내며 항상 아버지를 보러 오는 나를 말씀하시겠지.

그런데 웬걸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너희 셋 다 예쁘지만 그 중 큰딸, 그 큰딸이 아마 젤로 예쁘지 않겠냐.

왜냐하면 그 딸이 있어 내가 처음 부모가 되었고 그리고 그 뒤에 또 너희들이 태어났으니깐…, 그리고 첫째는 말을 참 따뜻하게 해” 하시며 눈물을 지으시더라.

내가 나이 들어 첫딸을 얻었잖아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 마음을 알겠더라.

뭐니 뭐니 해도 첫째, 그 첫째는 부모에게 그냥 있기만 해도 좋은, 뭐 하나 더 못해 줘서 아까운 자식이야.

그러니까 누나, 누나는 그냥 예쁜거야.

누나가 건강하게 잘 있는 거.

그것만 해도 아버지는 세상 누구보다 첫째 딸이 젤로 예쁜거야”라고 했었다.

그때 멍멍했던 머릿속에 탁 하고 전등 하나가 켜지는 듯 했다.

“아! 나는 부모님에게 그냥 있기만 해도 예쁜 존재구나. 그럼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날 이후부터 난 아버지에게 전화를 더욱 자주 하기 시작했다.

그냥 일상의 대화들을 나누었다. “아빠 뭐해?” 그리고 지금은 엄마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

“엄마 뭐해?”, “영화봤다며?”, “엄마 많이 울었다며?”, “엄마 오늘은 무슨 노래 들어?”, “엄마 오늘은 무슨 책 읽어? 한쪽 눈으로 책읽기 힘들지. 엄마 참 멋있어요. 한강 소설을 읽으며 감탄하고.”

엄마가 요즘 조금씩 행복이란 단어를 꺼내신다.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참 복에 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여유롭게 살아본 적이 있나 싶게.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잠도 원 없이 자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 행복하구나.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잘 먹어라. 잠도 잘 자고, 은숙아 지금 행복해야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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