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글씨
물의 길을 따라 흐르다 반딧불이의 길로 들어서는 ‘느림보 여행’자.
제주 출신 현택훈 시인은 최근 시집 ‘마음에 드는 글씨’를 발표했다.
특유의 서정적이며 다정한 감성으로 시와 산문을 써온 현 시인은 이번에도 제주의 서정을 그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숙대낭과 머쿠슬낭 그늘을 따라 걸으며 돌담 아래 수선화에 몸을 기울이고, 새소리를 따라 숲을 거닐다가 잃어버린 약속이 묻혀 있는 옛 서점 자리를 더듬기도 한다.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뜬 어머니를 ‘나의 작은 여동생’으로 그리워하고, 얼마 전 세상을 뜬 아버지는 고단한 육신을 벗고 빙글빙글 춤을 춘다.
귤 저글링을 하는 아내는 나의 꿈 얘기를 어둠처럼 가만히 들어주고, 시를 쓰게 하는 아이들이 있다.
책 말미에 해설 대신 마흔두 꼭지의 창작노트를 실었다. 시의 원천이 된 기록도 있고, 그 자체로 시가 되는 일상의 장면들이 생생하면서도 아름답다.
전작들에서처럼 시집 전반에 음악이 흐르고, 그 노래는 시인의 말처럼 ‘봄바다에게서 빌린’ 것들이기에 때론 흐릿하고 때론 끝이 나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에 선명한 글씨로 새겨질 듯하다.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