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 싹튼 제주 관악...교악대 지역 음악 꽃피우다
전쟁 속 싹튼 제주 관악...교악대 지역 음악 꽃피우다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3.04.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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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교악대 - 프롤로그
관악의 효시 제주
한국전쟁 기간 길버트 소령이 제주에서 음악 지도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우측부터 길버트 소령과 고봉식, 이성재, 한경화.

6ㆍ25전쟁 당시 제주로 온 전쟁고아들과 도민 불안을 위로한 것은 ‘관악’이었다.

전쟁 이후 1960년대 학교에 집중 설치되기 시작한 악대들은 도내 서양음악 발전을 주도해왔다.

이어 1981년 제주대학교 음악교육과(현 음악학부)가 창설돼 지역음악이 다변화됐고, 1995년 제주국제관악제가 첫 개최되기 이르렀다.

현재 제주지역 교악대는 60여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관악대가 절반 이상인 약 40곳을 차지해 전국 학교 관악대 대비 최다 수준이다.

본지는 6ㆍ25전쟁에서부터 시작된 도내 관악 뿌리를 살펴본다.

또 이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제주 교악대 역사와 오늘 날 제주 청소년 단원들의 성취, 꿈을 들여다본다.

■ 전쟁 속 피어오른 기적

길버트 소령(오른 쪽)이 1952년 7월 8일 오현고에서 고봉식 음악교사와 교악대 학생들과 촬영한 사진.

제주 서양음악은 한국전쟁이 낳은 아픔과 위로의 시대에 시작됐다.

당시 제주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타지인들이 유입됐다.

1950년 10월 유엔군 지원으로 서울 수송동에 민간 보육원으로 설립된 한국보육원이 제주로 본거지를 옮겼다.

이듬해 미국 최고의 마칭 밴드 지도자였던 ‘제주 관악의 은인’ 길버트 소령이 유엔민간 협력기관의 제주지역 책임자로 입도해 한국보육원 관악대를 창단했다.

이 관악대는 1955년 서울 휘경동으로 돌아갈 때까지 제주관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한국보육원에는 고아 1000여 명이 거주했는데 이 가운데 40명이 밴드부원으로 활동하며 서로의 전쟁 상처를 보듬었다.

서울과 부산, 대구, 제주 등에 있는 유엔군을 위해 순회 연주회를 가졌다.

이 외에도 길버트 소령은 오현고등학교, 제주농업고등학교, 제주중학교, 구세군 보육원 등에 악기 및 악보를 기증하고 직접 지도에 나서 관악을 부흥시켰다.

또 그는 고봉식(당시 오현고 교사), 이성재(당시 제주중 음악교사, 전 서울대 음대 교수), 한경화(한국보육원 관악대 지도)와 같은 밴드 지도자들을 직접 교육해 지역 음악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길버트 소령은 미국으로 귀국한 뒤 The Baton과 The School Musician지에 글을 기고해 한국과 제주, 전쟁 속 음악 교육 실태를 미국에 알렸다.

2014년 제주국제관악제에서 역사가 이어졌다.

6ㆍ25전쟁 당시 열한 살 나이로 제주에 온 이승만 부부 앞에서 클라리넷을 불었던 사진 속 한국보육원악대원 유인자 여사가 73세 나이로 제주국제관악제 무대에 섰고, 길버트 소령의 딸 아널드 여사 부부가 초청되기도 했다.
 
■ 제주음악 부흥 이끈 교악대

오현고 교악대의 영남예술제 활동.
오현고 교악대의 영남예술제 활동.

전쟁 이후 제주 관악은 교악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발전했다.

제주 관악 활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약 10여 년 간 오현고 교악대에 의해 이뤄졌다.

이들 교악대는 1953년부터 1973년까지 진주시에서 열린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에 16회 참가해 16연승을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6년 도내 음악교육 전문가 김수봉씨가 발표한 석사학위 논문 ‘학교 관악대에 보유하고 있는 악기의 효율적 활용(공유) 방안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여러 학교 악대가 창설되면서 제주 관악은 그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1964년은 효돈중학교에, 이와 비슷한 시기 중문중학교에, 1966년 서귀중학교에 관악대가 창설됐다. 1967년에는 세화고등학교에, 1968년에는 제주여고에 교악대가 창설되기 이르렀다.

이후 1970∼80년대 꾸준한 교악대 활동과 전국적인 관악인의 움직임으로 1992년 제주에서는 최초의 전국 규모 관악축제인 제17회 대한민국 관악제가 열렸다.

1994년에는 일본 하마쓰시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태평양관악제에 한국 대표로 제주고교연합악대가 출전하기도 했다.

1996년 아시아태평양관악제를 제주에 유치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무산됐다.

하지만 이는 제주 관악인들이 국제 규모의 관악제를 제주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고, 1995년 제주국제관악제를 처음으로 개최해 세계 관악인들이 제주를 찾게 됐다.

제주가 우리나라 관악의 효시라고 불리는 이유다.

■ 지역 음악의 다변화

1973년 한국관악대지도자협회 제주도 지부 창설 사진
1973년 한국관악대지도자협회 제주도 지부 창설 사진

1970년대부터는 도내 관악, 합창단 등 서양음악 분야 전반이 활성화 분위기를 맞았다. 일부 뜻있는 기관과 단체 후원을 받는 합창단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자체적 연주회를 열기 시작했다.

아울러 도내외 초청연주회 등의 활발한 움직임은 지역 음악 창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1973년 한국관악대지도자협회 제주도지부(지부장 고봉식)이 발족돼 관악영역이 확대됐고, 이즈음 제주제일고를 비롯한 제주농고, 남주고 등의 교악대가 생겨나 각종 행사 의식 진행해 적극 참여했다.

이후 1981년 도내 최초의 음악전문교육기관인 제주대학교 음악교육과가 설치됐고 관악뿐 아니라 교향악, 피아노, 성악 등 도내 음악 전공자들이 장르별로 다양하게 배출되기 시작했다.

대학의 전문 음악인들과 중등학교 관악대 활동은 보다 전문적인 관악 단체가 창립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2년 이선문 제주대학교 교수 주도 하에 중등학교 교사, 대학생을 중심으로 탐라관악합주단(42인조)가 창단됐고 창단 이후 3년 뒤 현재의 제주도립교향악단의 전신인 제주시립합주단으로 새롭게 창단됐다.
 
■ 학교 내 관악단 비율 전국 최다

제주 음악 발전을 이끈 교악대는 음악 새싹들에게 문화예술과 협동심을 기르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이 2021년 조사한 학생 오케스트라 운영학교 현황에 따르면 도내 교악대는 국악단을 포함해 총 68개교다.

이 가운데 초등학교가 29개교, 중학교가 16개교, 고등학교가 23개교다. 교악대 중에서도 관악대가 약 40개교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전국 학교 중 관악대 보유 비율이 최고 수준인 것이 특징이다.

이들 교악대는 도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음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꿈을 심어주고 있다.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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