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축제와 헤어질 결심…기후위기 대전환 시험대
들불축제와 헤어질 결심…기후위기 대전환 시험대
  • 김현종 기자
  • 승인 2023.03.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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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 농가마다 소를 길렀다. 소로 밭을 갈고 농산물을 운반했다.

농한기가 되면 농가들은 중산간 초지에 소를 방목해 윤번제로 관리했다. 늦겨울에서 경칩 무렵 마을별로 들판에 불을 놓았다. 전통 목축문화인 방애(화입). 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해 양질의 풀이 돋아나도록 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깃들어있다.

1997년 방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정월대보름 액막이와 소원 기원의례를 접목한 제주들불축제가 탄생했다. () 신철주 당시 북제주군수(2006년 순직)가 축제 기획을 주도했다. 아직도 고인을 리더십이 뛰어난 최고의 행정가로 기억하는 도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당초 명칭은 개최시기를 반영한 정월대보름 들불축제였고 애월읍 납읍구좌읍 덕천을 오가며 열리다 2000년부터 새별오름으로 축제장소가 고정됐다. 싸움 구경보다 재밌는 게 불 구경이라고 했던가. 30면적(축구장 42)의 오름이 활활 타는 장면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들불축제는 국내 유일 불 소재 축제로서 회를 거듭하며 대한민국 대표 문화관광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축제 방문객이 34~37만명선에 달했고 지역 관광경제 파급효과가 상당했다.

그랬던 들불축제가 흔들리고 있다.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지난해 취소에 이어 올해 불 없는 들불축제로 치러지면서 논란에 불을 댕겼다.

우선 축제 하이라이트인 오름 불 놓기의 불안정성이 문제다. 2년 연속으로 다른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한 여파로 들불축제가 정상 개최되지 못하면서 날짜를 바꿀 필요성이 제기된다.

2013년부터 경칩이 포함된 주말'로 변경된 현재 개최일인 3월은 건조한 탓에 국가 산불특별대책기간으로 지정되고 전국에서 산불이 잦아 언제 오름 불 놓기를 취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노출돼 있다. 산불 경계경보 발령에서 제주는 자체 위험지수에 따라 별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원래 들불축제가 열렸던 음력 정월대보름으로 되돌리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통상 2월은 강풍으로 불을 못 놓게 되는 변수가 상존한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떨어지긴 매한가지다. 2008년과 2009, 2012년 오름 불 놓기도 강풍과 강풍폭설로 1주일 또는 하루씩 연기됐다.

특히 탄소 배출과 환경 훼손에 대한 대안 마련은 시대적인 과제로 부상했다.

들불축제는 오름 불 놓기가 킬러콘텐츠인 만큼 태생적으로 대기오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후변화 규제에 맞춰 논밭두렁 소각도 금지되는데 들불을 놓는 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일리가 있는 이유다.

급기야 들불축제를 반대하는 시민모임이 등장해 슬로건을 친환경이라 둘러대고 인화물질로 불 태운 후 묘목을 나눠주는 건 저급한 그린워싱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오름 불 놓기를 전면 폐지하는 건 축제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답이 되기 어렵다. 불 놓기 규모 축소와 디지털장비 활용 보완 등 여러 목소리가 나오지만 묘안은 보이지 않는다.

오영훈 지사는 최근 간부공무원 티타임을 갖고 들불축제 방향성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다.

기후위기에 따른 대전환 시대, 들불축제를 계기로 제주가 시험대에 올랐다. 탄소중립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지속가능한 들불축제로 거듭날 수 있을지 여부는 제주 환경개발정책 전반에 중요한 방향타를 제시할 것이다.

그나저나 신 군수가 살아계셨다면 어떤 대안을 내놨을까.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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