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의 ‘머나먼 민주’
제주특별자치도의 ‘머나먼 민주’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5.12.0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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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더 나아가 1990년대에도 대학이나 노동현장에서 쉼 없이 불렸던 ‘운동노래’의 한 구절이다. 김지하 시인의 시에서 따온 것이지만. 당시 민주주의를 외치며 대열의 선봉에 섰건, 아니면 이름도 성도 다르지만,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생각이 같은 수많은 사람들과 스크럼을 짰던 그들에겐 아직도 잊히지 않는 노래다. 아니 꼭 ‘현장’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생각’이 있었던 그 시대 사람들은 적어도 한두 번쯤 목 놓아 불렀을 노래다. 30년 이상이 흐른 요즘 이 노래가 다시 회자하고 있다. 이는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동안 아득한 기억 속에 갇혀 있을 것으로만 여겨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다시 끄집어내게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의 법적 토대는 제주특별법이다. 이 법에 따라 제주특별자치도는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 가운데 국방과 외교 분야를 제외한 많은 분야의 권한을 넘겨받아 말 그대로 ‘특별한 자치’를 펼치는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시험지대가 됐다.

제주특별법은 제주에서만큼은 적어도 ‘헌법’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제주의 헌법과 같은 제주특별법이 요즘 참 꼴 우습게 망가지고 있다. 대법원의 사업승인 무효 판결로 공사가 중단된 서귀포시 예래휴양단지 조성사업을 되돌리기 위해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유원지 특례’를 만들려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법 개정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유원지의 공공성을 지키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사법부가 헌법적 가치에 기초해 내린 결정을 입법부가 정면으로 뒤집는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체계를 뒤집는 입법”이라고 비난했다.

‘법령의 범위 안에서’ 만들어 지는 조례(條例)를 개정할 때도 지방정부는 일정 기간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사회적 관심이 쏠릴 경우에는 공청회라는 ‘소통의 공간’을 통해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

이 같은 선상에서 제주특별법을 집행하는 지방정부인 제주도는 적어도 법 개정에 앞서 그 지방정부를 지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생각은 어떤지 정정당당하게 물어봐야 하는 게 이치다.

현실적으로 이미 꽤 많이 진척된 예래휴양형단지 조성사업을 애초 계획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제주도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다. 이는 법 이전 ‘정서’의 문제다. 도지사가 국회를 찾아 여야의원들을 직접 만나면서 제주특별법 개정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더욱이 제주를 위한다면, 도민들에게 제주의 헌법 격인 ‘제주특별법’ 개정의 당위성과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은 적이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예래휴양단지 사업은 과거 도정에서 엎질러진 일이다. 잘못이 있다면 과거 도정이 책임을 져야 한다.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행정행위의 연속성과 행정행위에 대한 신뢰보호라는 기본 원칙을 제주도정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잘못은 왜 발생했고 또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재발방지 약속을 도민들에게 한 뒤 (법 개정을) 시작해야 하는 게 도민들에 대한 도리다.

은감불원(殷鑑不遠)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거울삼을 만한 것은 먼 데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 말은 ‘망국의 선례(先例)는 바로 전대(前代)에 있다’는 뜻으로 더 알려지고 있다. 과거 제주도정에서 자행됐던 지방권력 사유화와 각종 개발사업과정에서 갖은 의혹이 발생한 것은 삼척동자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이를 모를 리 없는 제주도정은 마치 이를 정말 모르겠다는 듯 특별법 개정에 나서고 있다. 진정 제주도민을 위한 법 개정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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