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하면 국론통합인가
합창하면 국론통합인가
  • 제주칼럼
  • 승인 2016.05.2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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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 / 칼럼니스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齊唱)하면 국론분열이고, 합창(合唱)하면 국론통합인가? 결국 정부는 제창을 거부하고 합창을 택했다.

어느 신문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그 기저에는 ‘님을 위한…’에 종북 색깔을 입혀 5·18의 대의를 지우려는 퇴행적 역사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님을 위한…’ 제창이 아니라 제창 거부가 분열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래서 5·18문제는 ‘님을 위한…’을 5·18기념식에서 ‘제창하는가, 합창하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줄곧 제창해왔던 노래를,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국론분열을 이유로 제창을 거부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사이, 우리들의 청원을 집권세력이 유치한 논리로 거부하는 사이, 학살에 책임 있는 자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실컷 조롱하고 있다.

‘님을 위한…’ 조차 부를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하고 분노해야 한다. 과거 광주 영웅들이 “거기는 폭압적 정권도 없고, 돈과 빽이 아닌 능력과 기회가 균등하고, 골고루 잘 사는 대동세상이 됐냐”고 묻고 있다.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목숨 바쳐 지켜낸 ‘민주, 인권, 평화, 대동’ 정신을 지켜가기 위해서 더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

‘님을 위한…’은 민중가요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 작곡되었다.

원작자는 백기완, 작곡자는 김종률. 국어 맞춤법으로는 두음법칙을 적용해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바른 표기이다. 하지만 김종률이 “작곡 당시 고귀하고 숭고한 느낌의 ‘님’으로 정했다. 한용운 선생의 시 ‘님의 침묵’도 참고했다. 시적 표현으로 인정해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시 ‘묏비나리’를 토대로 1981년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쓰고 당시 전남대생 김종률이 곡을 붙여 탄생하였고, 그 후 5월 광주와 자랑스러운 한국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국가가 민주화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님을 위한…’을 제창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금지하고 합창하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5·18은 한국이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쟁취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된 역사적 사건이다.

국가적 기념일로 제정된 것은 정파적 입장을 떠나 역사적 의미에 모두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보훈처는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고 있는 상황에서 제창 방식을 강요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보훈처는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관례에 맞지 않는다고 했지만, 5·18이 1997년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제창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가 5·18에 대한 왜곡 공세를 펼치며 제창을 중단시킨 후 올해까지 8년째 지속되고 있는 이 소모적 논란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됐다.

그렇다면 제주의 ‘잠들지 않는 남도’는 어떤가? ‘잠들지 않는…’은 안치환이 작사·작곡한 민중가요이다. 제주4·3 당시 제주도는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이었다. 그 고립된 섬에 총소리가 들렸고, 무수한 양민들이 스러져갔다. 그렇지만 도민들의 끈질긴 싸움으로 제주4·3은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잠들지 않는…’도 태어났다.

4·3추념일에 ‘잠들지 않는…’도 제창하는 데 논란은 되풀이되었다. ‘님을 위한…’ 과 ‘잠들지 않는…’은 너무나 닮은 꼴로 역사를 응시하고 있다.

 

 

 

 

 

 

제주칼럼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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