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꺾인 正義(정의)
또 꺾인 正義(정의)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05.1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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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장은 국토계획법령 규정 상 유원지의 의미가 분명함에도 합리적 근거 없이 처분 요건이 충족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인가 처분을 했다. 이 인가처분은 그 하자가 중대·명백해 당연 무효이고, 당연 무효인 이 사건 인가 처분에 기초한 수용재결도 무효라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1년 전인 지난해 2월 30일 대법원 제 1부(재판장 대법관 김용덕·주심 대법관 김소영)이 예래휴양형주거단지 개발 사업과 관련, 토지수용을 당한 주민들이 제기한 ‘토지수용재결처분 취소 등 청구소송’ 상고심 선고공판 판결문의 일부다.

국토계획법에 의한 유원지 조성사업은 말 그대로 ‘국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오락과 휴양 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이 때문에 유원지는 도시계획시설로, 사업을 위해 토지수용이 허용된다. 즉 공공이 추구해야 하는 이익의 가치가 개인의 이익보다 월등하게 커 일정 범위 내에서 사익의 침해가 용인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래 휴양형 주거단지는 앞뒤가 바뀌었다. 공공성은 뒤로 밀린 채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휴양 시설을 조성한 뒤 이곳에 국내외 관광객, 특히 고소득 노년충을 유치하는 사업으로 변질됐다. ‘국민 복지 향상’이 사업에서 사라졌다.

#불가피성 인정되지만
토지를 강제로 빼앗기게 된 주민들이 제기한 이 소송 1심 선고는 2011년 1월 제주지방법원에서 이뤄졌다. 당시 법조계 인사들은 이 소송을 보면서 토지수용을 결정한 제주도지방토지수용위원회가 대법원에서도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도 제주도와 JDC는 사업이 이미 상당부분 진행돼 법원이 결국 ‘현재의 준엄한 상황’을 인정해 줄 것으로 믿고 갈 때까지 갔다. 결론은 제주도와 JDC의 기대를 허망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법원은 예래 휴양 단지에 대한 공사 중지까지 결정했다.

상황이 이처럼 진행되자 제주도라는 지방정부와 제주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국토해양부 산하 특수 법인으로, JDC라는 공공 기관을 한 치의 의심 없이 믿고 투자한 버자야그룹이 할 말을 잃었다.

당장 사업 중단에 따른 3500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을 비롯해, 사업이 무산될 경우 5조원대의 소송도 예고했다. 이 문제는 나아가 제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대외 신뢰까지 먹칠할 수 있는 상황으로 번졌다. 결국 제주도와 JDC는 유원지 범위에 관광 시설을 포함시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제주특별법 개정을 추진, 법 개정을 이뤄냈다.

제주도와 JDC가 이 같이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모든 것을 정당화 시킬 순 없다.

#법 앞의 평등 무너져
사법정의라는 말이 있다.
최근 유행처럼 정치권에서 번지고 있는 경제정의와 함께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인 사법정의는 말 그대로 법 앞의 평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난 사건을 아예 법을 개정해 뒤집는 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는 소급입법을 금지한 헌법 정신과도 충돌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우리 헌법 제13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들을 볼 때 개정된 제주특별법은 설사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헌법 정신과 배치돼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더 큰 문제는 ‘중대하고 명백한 당연 무효’인 행정 행위가 이뤄졌는데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제주도는 이제라도 도민들 앞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과거 도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그냥 넘겨선 안 된다. 또 재발 방지와 책임자에 대한 책임 추궁을 약속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법적 투쟁을 벌여온 주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는 최소한의 선행 조건이다.

아무리 추구해야 할 사회적 이익이 크다고 하더라도, 소수 사회 구성원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해선 안 된다. 그 유명한 우리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정의하고 있다. 부당한 행정 행위에 싸워 온 그 주민들이 곧 국민이다. 국민을 이길 권력은 없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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