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온 인어공주의 눈물
우크라이나에서 온 인어공주의 눈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9.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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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숨비 대표이사·논설위원

필자는 아쿠아리움 수중공연을 담당하는 공연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2012년 제주의 아쿠아플라넷을 시작으로 여수, 일산, 서울 63빌딩, 부산, 대구, 부천 등 전국의 아쿠아리움은 물론 한 때 중국 완다그룹의 아쿠아리움에까지 진출하려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아쿠아리움의 모든 공연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처음엔 3개월만 지나면 정상화된다. 6개월만 버티면 좋아질 거다라는 말들을 믿었다. 1년이 지나니 주변 공연업계가 절반은 도산하거나 폐업을 했다.

 계속된 적자에 폐업을 권유하는 주변의 조언에도 요즘 말로 ‘존버정신’으로 지금까지 8억을 대출받아 꿋꿋히 버텼다. 사실 나 혼자였으면 버티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코로나라는 암흑 같은 터널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헌신한 직원들과 격려와 용기를 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다행히 아쿠아리움에서 인연을 맺은 관장님의 도움으로 지난해부터 다시 공연 사업을 재개하게 되었다. 대전을 시작으로 현재는 부산, 서울 코엑스, 부천, 등에서 수중공연을 하고 있다. 알다시피 수중공연 주인공은 주로 인어공주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10여 년간 우리는 수중발레종목에 독보적인 동유럽 수중발레 선수들을 채용해 왔다. 이들의 국적은 주로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출신이다. 

 그 중에는 수년간 함께 일해 가족 같은 공연자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말은 잘 안 통하지만(서로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몰라 공연자와는 영어로 소통한다) 눈빛만 봐도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 출신의 타냐에게서 ‘이번 주 일요일 서울의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모여 러시아 반전 시위를 할 예정이다. 나도 참가하고 싶은데 쉴 수 있는지’라는 카톡이 왔다. 

 입국 때부터 평소보다 얼굴이 어두웠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고 나의 무심함에 미안했다. 흔쾌히 그녀의 시위 참가를 위한 휴가를 승낙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상황을 물으니 ‘전쟁 중이라 모든 남성은 출국이 금지되었고 그래서 남편도 우크라이나에 있다. 그래서 매우 불안하다’ 고 했다. 그녀의 남편도 코로나 전 스쿠버다이버 공연자였다. 공연 끝나고 항상 함께 하던 커플이 었는데 지금은 결혼해 부부가 되었다. 이후 그녀에게서 장문의 카톡과 사진들이 왔다. 그것을 보며 그녀의 조국 우크라이나가 처한 현실이 21세기에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폭격으로 집과 가족을 잃고 추위와 배고픔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필자는 즉시 타냐가 준 자료들을 각 언론사에 보내며 보도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사안이 민감하여 선뜻 보도를 해주겠다는 언론사는 많지 않았다. 모든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힘 없는 여성과 아동이다. 폭력으로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는 그들의 실상을 우리는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현존하는 유일한 휴전 국가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가져올 비극을 더욱 잘 알고 있다.

 21세기 평화와 인권을 최우선시하는 이 시대에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상을 널리 알려 세계인의 공감대를 확보하고, 각국이 공조해 러시아 푸틴의 전쟁 야욕을 막아 종전과 평화의 해법을 시급히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에서 온 인어공주가 더 이상 조국의 참상을 뉴스로 보며 울지 않고 웃는 모습으로 공연할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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