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목표? 자본보다 사람이 먼저"
"디자인 목표? 자본보다 사람이 먼저"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05.10 1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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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선후 디자이너…"공공디자인은 효울성·아름다움에 원형 성격 더하는 것"
박선후 디자이너

버스정류장이나 거리의 벤치, 휴지통, 화단, 지하철 캐노피, 박물관의 안내표지판이 언젠가부터 많이 달라졌다. 좀 더 편리하고, 자연스럽고, 예뻐졌다. 사람들의 패션만큼이나 거리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회색 콘크리트에 생명을 불어넣는 공공디자인(Public design)의 결실들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한국의 대표 공공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박선후 디자이너(49)를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거리, 공간, 시설물처럼 공공재의 디자인은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다수의 대중들이 이용하면서 편해야 하고 효율성도 따져야 하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워야 하지요. 하지만 거기에 가장 중요한 원형의 성격(정신)을 잃어버리면 안된다는 거지요”

박선후 디자이너가 조심스레 지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과하게 부각하면 디자인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그가 운영하는 디자인회사 ‘KENLL’도 이런 그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KEN’은 지식의 범주, 이해의 범주라는 의미이고 여기에 ‘Identity’를 잃지 않고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자는 의미에서 ‘KENLL IDENTITY’이란 이름이 만들어졌다.

“우리 선조들이 초상인물화를 보면 화선지 뒷면에 옅은 채색을 해왔습니다. 눈으로 보여지는 사실보다 그 안에 내재된 정신, 가치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전신사조(傳神寫照)’라는 그 말처럼 적당히 보기좋게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를 고민하고 디자인에 담아내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서울시가 공공표준형디자인으로 선정한 그의 작품인 지하철 캐노피에도 한국의 둥근 처마와 기둥에 기와를 얹은 듯한 정서를 담아냈고 문화재청이 서울5대 궁궐 공공시설물 디자인개발총괄을 그에게 맡긴 것도 같은 이유다. 청계천과 시청역 등에 설치된 벤치 등 그의 손을 거쳐간 수많은 전시·공연·시설물 설계와 작품에는 늘 이같은 고민이 담겨있다.

어떻게 공공디자인 분야를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미술도 좋아했지만, 철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공부하다 보니 흐름, 맥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지, 공공성에 대한 고민들도 자연스레 생겨났지요. 현대사회에서 사람은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존재로 내몰리지요. 사람을 위한 환경이 아니라 자본에 필요한 사람으로 뒤바뀌는 현실, 그런 문제인식이 공공디자인으로 저를 도드라지게 한 것 같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우리 대학 미술전공에서 제가 제주출신으로는 세 번째였습니다. 강요배 선생님이 첫 번째였고, 산업디자인 쪽은 제가 처음이었죠. 솔직히 우리세대는 학과에 대해 잘 모르고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도 그런 케이스예요. 하지만 다행히 제 정서와 전공이 잘 맞아떨어졌지요”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서울시 등의 디자인심의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뽀통령으로 불리는 ‘뽀로로’의 기획과 런칭을 맡았었고 독립기념관 광복 66주년 기념특별전의 전시설계와 시공, 국립대구박물관의 안중근 순국 100주년 특별전 전시디자인 및 설계 시공 등은 물론 정부와 공공기관, 대기업의 홍보전략과 마케팅 분야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얼마전 성황리에 마친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의 로고를 만든 이도 그다. 구럼비바위를 상징하는 파란색 위의 붉은 글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과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의 희귀종 ‘붉은발말똥게’를 의미한다.

펭귄을 좋아하는 한 디자이너가 고글을 쓴 동글동글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시작됐다는 뽀로로의 탄생과정에 대한 일화도 이야기해줬다.

고교시절을 묻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학교체육관 큰 벽면에 학교를 상징하는 용을 그리게 됐는데 친구들과 공사장에서 쓰는 장비(공사현장에서는 아시바라고 불리는 철제 구조물)를 직접 구해와 설치하고 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안전장치나 보호장비도 하나 없이 붓과 페인트 달랑 들고 올라간 거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몇해전 그는 모교에서 재밌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개교 60주년을 앞둬 학교 이미지통합사업을 후배들과 진행한 것. 고교 졸업후 이십년이 훨씬 지났지만 학생들과 동문들이 참여하는 T/F를 꾸려 학교이미지물들을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어린 후배들 앞에서 강의도 하고, 아이들과 회의도 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걸 계기로 제가 졸업한 중학교에서도 연락이 와 작업을 했는데,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박선후씨는 모교인 제주제일고의 이미지통합사업을 진행한 후 제주제일중의 교문도 새롭게 설계했다. 사진은 제주제일중 교문.

그는 제주를 고향으로 둔 것에 대한 행복하다는 말로 이어갔다.

“대학에 간 후 알게 됐는데, 제가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물감과 붓을 사용하는데도 색깔, 색감이 달랐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다른 친구들은 원색을 잘 활용하지만, 저는 자연이 주는 느낌, 분위기를 더 잘 살려낸다는 칭찬을 듣곤 했습니다. 제주에서 본 현무암질감, ‘퍼렇다’는 어감의 바다색, ‘날 것’을 보고 자란 감성이 녹아났던 거지요. 노력해서 얻어질 수 없는 그런 자산을 자연스럽게 체득됐던 겁니다”

제주의 도시디자인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자 “이미 너무 많은 인공조형물들이 들어서 제주다움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제주는 무엇보다 자연경관이 제일이지요. 갑자기 늘어나는 인구, 주택문제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관광산업 발전이란 이유로 마구잡이 개발이 진행된다면 그것은 발전, 개발이 아니라 훼손, 퇴행일 뿐입니다. 경관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제주다움’을 즐기기 위해 찾는 이들이 발길을 끊을 겁니다. 세계 여러 관광도시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가 증명합니다. 개발론자들의 이야기보다 제주에 살고, 앞으로 계속 살아갈 이들의 목소리를 더 비중있게 다뤄야 하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디자이너 박선후는

1967년 생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일고와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 미술사학과에서 대학원을 수료했다.

현재 디자인회사 ㈜케넬아덴티티 대표이사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서울디자인위원회 심의위원,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상수도본부, 노원구, 광주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심의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뽀통령으로 불리는 ‘뽀로로’를 만들어낸 OCON에서 기획과 런칭을 맡았었고 기업보다는 주로 정부와 공공기관, 박물관 등의 도시디자인과 공공시설물 분야에서 일해왔다. 국제공공디자인재단의 국제공공디자인어워드 Grand Prix(2009), Bextar Award<BEST>(2012), 서울인쇄문화대상(2012)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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