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행적과 역사
조상의 행적과 역사
  • 제주일보
  • 승인 2016.05.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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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림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최근에 우리 친족회에서는 구전으로 전해 오던 선조들의 일화나 행적을 잊지 않기 위해 ‘조상의 발자취’라는 서사적(敍事的) 족보를 만들었다. 물론 기존 형태의 족보도 계속하여 보완하고 있다.

세월이 가고,옛 일에 대한 기억도 아득해지는 요즈음, 가끔은 조상들의 행적을 살펴볼 때가 있다.조상의 발자취 속에는 마을을 위해 진력하던 일, 일본에서 큰 기업을 일으키고친족회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던 일, 해방을 전후해 일제에 항거하던 일, 4·3의 비극 속에서 살아남아 가난을 극복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선조들의 행적은 주로 밝은 면만 부각되고 어두운 면은 기술돼 있지 않다. 술을 즐겨 들었다는 말은 있지만, 주정했다는 일은 없다. 어쩌면 족보는 숭조(崇祖)의 관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어두운 면은 애초부터 무시됐을 것이다. 어두운 면이 드러나야 한다면 그것을 놓고 친족끼리 비난하며 싸움부터 하게 될 것이다.

제주도의 ‘큰굿’을 보면, ‘석살림’의 재차(祭次)에 들어가면서 심방은 신을 즐겁게 하며 기원하기 위해 ‘귀신은 본을 풀면 신나는 법이옵고, 생인(生人)은 본풀면 백년 원수지는 법이외다’라는 구절을 음송한다.

신의 내력을 경전처럼 한자 한자 읊으면, 신은 그만 기분이 좋아져 기원하는 것을 흔쾌히 들어 준다반면 인간은 그 내력을 닦으면, 나쁜 짓이 드러나게 돼 싸움이 일어나고, 몇 대에 걸쳐 원수지게 된다. 실제로 제삿날 근친끼리 언쟁이 가끔 벌어지는 일이 있는데, 이는 과거사가 나오면 기분 좋은 일보다는 보통 언짢고 섭섭한 일을 들춰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조선조의 사관(史官)들은 생명을 걸고 왕의 행적을 가감없이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공적만 추겨세우고, 과실을 숨겨버리면, 왕의 행적은 절대자의 그것과 같이 돼 신격화의 길로 치닫게 된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전혀 못하고 비판은 불경죄가 된다. 역사는 암흑기에 들어 발전하지 못하고 과거를 되풀이하게 된다. 역사는 조상의 행적과는 다른 것이다.

언젠가 어느 시장(市長)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 추겨 올린 일이 있다. 나는 정말 반신반의하면서 들었지만,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인간을 우상화하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가를 제2차대전 당시 일본 천황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안다. 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천황을 처단하지 않았던 일본은 또다시 과거사로 회귀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 않는가.

역사를 사실대로,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기술하지 않으면 왜곡하게 된다. 애매한 것은 새로운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그대로 두지 않고, 억지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경우에는 소설이 되고 만다. 과거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개인이나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제주일보 기자  startto@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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