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 푸른 벌판에 창창한 수망(민)오롬
겨울 속 푸른 벌판에 창창한 수망(민)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2.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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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수망(민)오롬

국영목장→화전촌→방에불이 타며 대머리였던 민오롬
중잣성에서 바라본 수망(민)오롬 전경.

대한을 닷새 앞둔 일월, 토요일 어느 날이다. 남조로 상의 사려니 숲을 지나는데 늘어선 차량들이 끝없이 붐빈다. 길 양편에는 앞서 내린 눈이 아직도 하얗다. 남조로를 따라가다가 수망리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서성로로 들어선다. 2㎞쯤 더 가는 길 중간에 ‘머체왓 숲길 입구’를 지나게 된다. 로타리에서 우회전해 나가면 억세 밭 평원으로 들어선다.

가을을 넘기고도 그 추억을 떨궈 버리지 못한 억새꽃 줄기가 아직도 하얀 머리털이다. 이따금씩 푸른 하늘 아래 흰 모자를 눌러 쓴 한라산 봉우리가 언뜻언뜻 스친다. 조금 더 나아가니 3m 남짓한 비자나무 조림지를 만난다. 송당리 거슨세미오롬에서 본 비자나무 조림지 말고는 수망(민)오롬 입구가 처음이다. 비자나무 조림지는 1㎞쯤 쭈욱 이어진다.

좌측으로 오롬을 끼고 돌아가면 고목으로 자란 가시나무(너도밤나무과 참나무속 상록수)터널을 지난다. 왼쪽으로는 ‘의귀 에코힐링마로코스’ 표지판이 보인다. 그리고 수망(민)오롬의 울창한 삼나무 아래 얕게 깔린 눈발이 발치까지 내려와 있다. 푸른 목초밭 울타리에는 서귀포시 공원녹지과에서 세운 표지판이 보인다. ‘상기 토지는 서귀포시에서 관리하는 공유지며 향후 나무 심기 활용예정인 토지이오니 토지 이용을 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다.

어쩌면 이 땅에도 앞서와 같이 비자나무를 심을 것 같다. 맞은 편, 우측으로는 화전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 화전마을은 조선 말기 지방관아에서 부족한 세금을 채우기 위해 국영목장 안에 불을 놓는 것을 허락하므로 이를 계기로 농민들 사이에서 화전이 성행했다는 것이다. 그 후 4·3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5가구 정도가 이곳에서 화전을 일궈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니 이 오롬에 나무가 없으니 대머리 같은 수망(민)오롬이였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제주도는 해방의 기쁨을 누릴 새 없이 민란이 시작됐다. 그 결과 1948년 4월 3일 새벽에 드디어 4·3사건의 막이 열린다. 그 결과 6·25 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 1개월간 교전이 이어진다. 4·3사건은 1954년 9월 21일까지 죽음의 긴 터널을 지나왔다. ‘제주의 곶자왈 숲과 오롬들은 좌익들의 숨을 곳을 없앤다.’라는 이유로 또 한 번 불태워졌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인 1970년 초에도 제주도는 주업이 목축이었으니 겨울에는 가시덤불을 태우고, 진드기 애벌레를 태우기 위해서 ‘방엣불’을 놓았다. 영등(2월)달에는 몰쉬(말과 소)를 먹이는 집에서는 들판(초원)에서 오롬까지 방엣불을 놓았다. 방엣불의 ’방防‘은 ’방지한다‘, ‘애(에)’는 ‘애벌레’라는 뜻으로 ‘진드기 애벌레를 죽인다.’는 말인데 지금도 만주에서는 진드기를 ‘어에’라 한다. 또한 2013년 연해주에서 지내며 보니 넓은 벌판에 방엣불을 놓고 있었다.

▲수망(민)오롬의 다른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①이미 고려 때 몽골에서 말이 들어오고 목초를 키우면서 방엣불이 시작돼 민오롬이었을 것이다. ②또한, 조선 시대에도 국영마장이 취소되고 화전을 일구며 민오롬이었을 것이다. ③5·16 군부 정권 치하 시, 1970년도까지만 하여도 목축을 위해서 방엣불을 놓으며 나무 자랄 틈이 없었을 테니 민오롬이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 이 지역은 상·중·하 세 개의 잣성 중에 중잣성 마장이었을 것이며 지금도 수망(민)오롬을 오르는 입구의 맞은편에는 잣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울창한 숲으로 조성된 것은 군부 정권의 산림녹화를 강제한 결과로 보인다. 수망(민)오롬에는 정자·평상·화장실·야자매트·계단·로프 등의 시설이 돼 있어서 탐방로는 정상까지 쭈욱 이어지고 있었다.

▲수망(민)오롬의 주요 수종은 삼나무인데 크게 자란 삼나무의 둘레는 한발 한자(190㎝) 정도인데 소나무·편백나무도 종종 보인다. 제주도 숲 지역에 보이는 삼나무에는 독성이 심해 다른 수종이 잘 자랄 수 없다. 삼나무 아래서 자라는 식물이란 양치식물인 고사리 종류가 고작이다. 그런데 이곳 수망(민)오롬에는 붉은 열매를 달고 있는 천냥금, 검은 눈물이 맺힌 사스래피나무도 종종 보인다. 소나무 아래는 1m가 안 되는 새덕이 묘목들이 꽤 많이 보인다.  정상에도 삼나무·소나무가 조금 보이나 바람에 날려 온 것이다. 굼부리로 내려가는 구릉은 다소 가팔라 눈이 내려 미끄러워서  조심해야 했었다. 굼부리로 내려가는 곳엔 단풍나무·고로쇠나무·참식나무·새덕이나무 등이 보인다. 굼부리는 서북에서 동남으로 열려진 말굽형으로 음푹 패였다. 굼부리 구릉에는 동백나무·윤노리나무·가막살나무들도 창창하다.

▲정상 근처엔 긴 풀들이 베어져 어느 정도 전망을 트였다. 그러나 찔레·산딸기·쥐똥나무 등이 푸른 인동초잎과 붉은 마삭줄 등과 뒤엉켜 있다. 서쪽으로는 눈 덮인 한라산 정상과 아래턱쯤에는 웃방에·알방에오롬까지 보인다. 모가지쯤에는 입석오롬·사라오롬까지 눈발이 서려 있다. 서북으로는 푸른 곳자왈 숲 건너에 우뚝한 말찾오롬·물찻오롬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겨울에도 푸른 사려니 숲 바닷속에 머리를 내민 볼록볼록한 오롬들이 보인다. 수망(민)오롬 정상 남쪽으로는 눈부신 남녘 바다 위에 고래 등 같은 지귀도가 보인다. 멀리 서귀포 앞바다 왼쪽으로는 섭섬, 오른쪽으로는 범섬도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이라 잎사귀가 진 잡목 가지 사이로 보인다. 이 풍경도 푸른 계절에는 나뭇가지에 막혀 볼 수 없다. 또한, 저절로 자란 소나무와 잡목들로 인해 한라산 절경도 가리니 잘라내야 할 텐데 아쉬움 너무 크다. 이런 현상은 이곳뿐 아니라 제주오롬 전역에 걸친 문제들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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