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드러난 미군정의 4·3 인식…“도민 희생 뒷전”
그대로 드러난 미군정의 4·3 인식…“도민 희생 뒷전”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08.03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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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6월 18일 박진경 대령 암살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제주에 온 로버츠 주한미군사고문단장(왼쪽)이 받들어 총에 답례하고 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발췌.
1948년 6월 18일 박진경 대령 암살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제주에 온 로버츠 주한미군사고문단장(왼쪽)이 받들어 총에 답례하고 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발췌.

“크게 환영을 받았습니다…(중략)…‘홈런’이었습니다.” 제주4·3 당시 미국에게 도민의 희생은 이승만 대통령의 제주 방문보다 뒷전이었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이하 평화재단)은 ‘제주4·3사건추가진상조사자료집 미국자료 Ⅲ,Ⅳ,Ⅴ’(이하 자료집)를 발간했다고 3일 밝혔다.

미국자료 Ⅰ,Ⅱ에 이어 추가 발간된 이번 자료집은 2018년부터 미국 조사를 주도적으로 조사해온 평화재단 조사연구실(실장 양정심)의 성과물이다.

평화재단은 2018년에 신설한 조사연구실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파견해 ▲미군정청(USAMGIK) ▲미 군사고문단(KMAG) 등 남한 현지 기관과 ▲극동군사령부(FEC) ▲연합군사령부(SCAP) 등 주한미군 상위기관이 생산한 약 3만8500매 분량의 4·3 관련 문서를 수집했다.

평화재단은 이번에 추가 발간한 자료집에 4·3 발발 시기인 1948년 4월 3일부터 이듬해 연말 사이 생산된 미군정 및 주한미군사고문단의 주요 문서를 번역본과 함께 수록했다.

특히 미군 현지 조사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 중 한반도와 제주를 바라보던 미군정청 및 군사고문단의 인식과 활동이 그대로 드러나는 문서들도 다수 실렸다.

4·3에 대한 미군정 및 미국의 인식이 드러나는 문서들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진상규명 과정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 주한미군사고문단장인 로버츠(Roberts) 준장은 1948년 12월 18일 이범석 국민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초토화 작전을 주도한 송요찬 중령이 대단한 지휘력을 발휘했다며 이를 신문과 방송, 그리고 대통령의 성명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자료집Ⅴ 수록).

이에 대해 당시 채병덕 참모총장은 “한국군 사령부가 송 중령의 임무를 자세히 보고 받을 것이며, 적절한 훈장을 수여할 것”이라고 답했다(자료집Ⅴ 수록).

수많은 도민들이 희생당했던 초토화 작전의 지휘관을 미군정이 직접 치하하면서 우리나라 정부에 합당한 보상을 해줘야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특히 로버츠 준장은 폭도와 반란군을 소탕할 것이며, 이를 위해 제주에 1개 대대를 추가 파병하겠다는 채병덕 참모총장의 서한(자료집Ⅴ 수록)에 대해 “최고 수준의 판단”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4·3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1949년 4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제주 방문해 대해 로버츠 준장은 미국 국방부 웨드마이어 중장에게 서한을 보내 “크게 환영을 받았습니다…홈런이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미군정이 도민들의 희생은 뒤로 한 채 이승만의 순방을 국가를 위한 유익한 행동으로 평가한 것이다.

미국 자료 수집과 연구를 이끌어 온 양정심 조사연구실장은 “수집된 미국자료 중에는 미군정과 군사고문단 수뇌부의 인식을 직접 기록한 자료들이 많고, 이런 정보를 미 정부 및 군 최고 수뇌부가 공유·인지하고 있음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무엇보다 2001년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출간된 4·3중앙위원회의 미국자료집은 NARA의 분류 체계에 따른 출처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증거자료로서의 가치가 반감됐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수집한 문서들은 출처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증거력을 되살렸다”고 말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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