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악계 큰 별 진 그 날, 만년설 고봉의 여명도 ‘숙연’
한국 산악계 큰 별 진 그 날, 만년설 고봉의 여명도 ‘숙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4.1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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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수확의 여신 안나푸르나 길을 걷다(5)
따다빠니 숙소 뒤 작은 언덕에 올라 바라본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여명.
따다빠니 숙소 뒤 작은 언덕에 올라 바라본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여명.

■ 그리운 박영석 대장
어제 트레킹 내내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새벽에 소식을 들으니 한국 산악인 박영석 팀이 신 루트 개척 중 추락해 구조를 위해 출동한 헬기였답니다. 박영석 대장은 인류 최초로 ‘탐험계의 4관왕’(true expedition grand slam)을 달성한 전설적인 산악인입니다.

그러고 보니 안나푸르나는 한국 산악인들과는 악연이 깊은 산입니다. 1999년 한국 여성 최초 북미 최고봉 및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지현옥 대장이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한 후 북면으로 하산하던 중 추락해 사망했고, 엄홍길 대장도 다리가 부러지는 생사의 고비를 겪었던 산입니다.

박영석 대장은 안나푸르나 신 루트 개척을 떠나기 전 잠시 제주에 왔을 때 제가 운영하는 미술관을 찾아와 만났던 적이 있는 산악인이라 사고 소식을 듣고 부디 큰 사고가 아니길 빌었는데 결국 사망했다는 추가 소식이 전해져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새벽부터 가슴 아픈 소식을 듣고 씁쓸한 기분으로 마차푸차레 여명을 보려고 숙소 뒤쪽 작은 언덕을 올랐습니다. 언제 왔는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해가 뜨기를 기다립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앉았지만, 멀리 안나푸르나 봉을 보니 숙연한 기분이 듭니다.

시간이 흐르고 멀리 산봉우리 끝부터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해 눈앞에 우뚝 서 있는 마차푸차레가 마지막으로 물들어 가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와~’ 하고 자연의 신비에 연신 감탄합니다.

마차푸차레는 아직도 인간 미답의 봉입니다. 네팔 사람들은 이 산을 종교적으로 신성시하는데 힌두교의 시바신에게 바친 산이라고 해 등정이 불가하다고 합니다. 우뚝 선 바위가 매우 위협적인 모습의 마차푸차레, 산악인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 오르고 싶은 욕망을 끌게 하는 산입니다.

오늘은 이번 트레킹 코스 중 가장 긴 거리로 10시간 정도 걷기도 하지만, 또 가장 높은 데우랄리(3800m)를 넘어야 하는 힘든 하루가 될 것이라며 점심은 김밥을 준비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걸어가면서 멀리 안나푸르나를 볼 때마다 박영석 대장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곱디고운 얼굴에 미소가 일품이었던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산악인이었는데…. 그리고 제주도 산악인 고(故) 오희준 악우를 무척 아껴 에베레스트 등 여러 고봉 등반 때는 물론 북극 탐험대까지 동행하며 오희준을 세계적인 산악인으로 키워준 그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따다빠니를 출발하자 가파른 바위길을 한참 내려갑니다. 아마도 이 길 때문에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은 따다빠니가 마지막 종점인 듯합니다. 어제처럼 너무 빨리 걸어 일행들과 많이 떨어지면 또 괜한 걱정을 할 것 같아 천천히 걸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지만, 습관 때문인지 얼마 못 가서 빠른 걸음을 걷기 시작합니다.

해발 3800m의 데우랄리에 올라서니 멀리 히말라야 연봉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감탄을 자아낸다.
해발 3800m의 데우랄리에 올라서니 멀리 히말라야 연봉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감탄을 자아낸다.

오솔길 같은 숲길을 걸으니 한라산의 어느 코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3180m 반단티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부터는 히말라야 연봉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고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보입니다. 

산 능선길을 걷는 기분은 우리나라 산이든 외국산이든 똑 같습니다. 히말라야의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등 대산군을 따라 신 나게 걷는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신나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지만, 그냥 속으로 웅얼거리며 걷는데 앞쪽 언덕에 트레커들이 몰려 있습니다.

■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히말라야 산군
울긋불긋 타루초(불교 경전이 적힌 깃발)도 날리는 이곳이 이번 트레킹 코스 중 가장 높다는 데우랄리랍니다. 매우 힘들 것이라 했지만, 생각보다 쉽게 오른 듯합니다. 

동산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히말라야 산군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숨을 멈추게 합니다. 트레커들은 가장 편한 자세로 앉거나 드러누워 히말라야 연봉들을 바라보며 “원더풀”을 외칩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본 한 외국인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데 경치가 매우 좋다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작은 탑 위에 아슬아슬하게 오를 때는 어깨를 빌려주기도 합니다.

한낮이어서 약간 뿌연 현상 때문에 시원한 모습은 아니지만, 처음 본 히말라야 산맥들 모습에 저는 앞뒤 안 가리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저도 여유를 가지고 드러누워 오고 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히말라야 고봉들을 감상하는 시간도 가져봅니다. 역시 여행은 이런 기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원한 바람에 그간 흘린 땀을 날리고 오늘 숙소인 고레빠니(2860m)로 향합니다. 내리막길을 내려서자 지금까지 봤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숲길이 나옵니다. 이 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자 멀리 꽤 커 보이는 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레빠니입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아이는 미래의 보배”라고 말하는 네팔 사람들, 마을마다 아이들이 참 많다.
“아이는 미래의 보배”라고 말하는 네팔 사람들, 마을마다 아이들이 참 많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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