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욕칠정 번뇌 씻겨주는 ‘성스러운 호수’
오욕칠정 번뇌 씻겨주는 ‘성스러운 호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2.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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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신들의 땅, 세계의 지붕 서티벳을 가다(23)
‘성산’ 카일라스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로 이뤄진 마나사로바 호수.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뵌교(본교)의 신도들은 이 호수를 성호(聖湖)라고 부른다.
‘성산’ 카일라스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로 이뤄진 마나사로바 호수.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뵌교(본교)의 신도들은 이 호수를 성호(聖湖)라고 부른다.

■ 이국의 역사를 듣고 깊은 사색  
아리(阿里)고원에 신비의 왕국을 건설해 700여 년을 존속하다 불가사의하게 사라져버린 구게 왕국을 두고 학자들은 역사문화의 미스터리, 종교 신앙의 미스터리, 자연 지리 환경의 미스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절벽 위에 세워져 모진 풍상을 묵묵히 지켜본 저 건물만이 한 시대의 문명을 자랑했던 구게 왕국의 비애를 알고 있는지, 차를 타고 가며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보고 있습니다.

여행하다 보면 어떤 역사 현장을 찾았을 때 괜히 깊은 사색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아닌 머나먼 이국땅, 이국의 역사를 듣고 말입니다.

차가 넓은 티벳 고원을 달리기 시작하자 감상에 젖어있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우리 일행은 새로운 성지인 ‘하늘 호수’ 마나사로바로 향하고 있습니다. 

매일 해발 4000~5000m가 넘는 고원지대를 다닌 지도 17일째, 이제 6일이면 서티벳 대탐사도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 뭔가 아쉬움만 남는 것 같습니다.

같은 길을 달려도 갈 때와 올 때, 그 모양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어떤 현상일까. 토림(土林) 지대를 지날 때와 꼭 같은 장소인데 환경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티벳고원, 시원스럽게 뻗어있는 길을 달리다 문득 밖을 보니 멀리 카일라스가 새로운 모습으로 서서히 보이자 모두가 ‘와~’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며칠 전 다녀온 산이라 더욱 감회가 깊은 듯 잠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느라 바쁩니다. 

■ ‘우주의 자궁’ 마나사로바
마나사로바 호수, 티벳 사람들은 이 호수를 ‘마팜유초’(Mapham Yutso)라고 부릅니다. ‘초’는 호수, ‘마팜’은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는 존엄한 존재라는 뜻이랍니다.

카일라스에서 동남쪽으로 약 20㎞ 떨어져 있는 이 호수는 카일라스 만년설을 수원(水源)으로 해발 4583m에 자리했고, 둘레 약 80㎞, 넓이 412㎢의 거대한 담수호(염분 함유량이 1ℓ 중 500㎎ 이하인 호수)입니다.

마나사로바 호수는 카일라스와 더불어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뵌교(본교)의 신도에게는 ‘성호’(聖湖·Manasarovar)로 불리는 성지로 많은 순례자가 3~5일 일정으로 호수 주위를 일주하며, 이 호수에서 목욕하면 모든 죄가 정화된다고 믿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카일라스 봉우리를 시바 신의 성스러운 남근으로, 마나사로바 호수는 거대한 연화지, 즉 자궁으로 여긴다.
힌두교에서는 카일라스 봉우리를 시바 신의 성스러운 남근으로, 마나사로바 호수는 거대한 연화지, 즉 자궁으로 여긴다.

또 카일라스를 ‘우주의 중심’, 마나사로바를 ‘우주의 자궁’이라고 말하는데, 특히 힌두교에서는 카일라스 봉우리를 시바 신의 성스러운 남근으로, 이 호수는 거대한 연화지(蓮花池), 즉 자궁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다르젠 마을에서 마나사로바 호수는 멀지 않은 곳입니다. 차를 타고 넓은 초원을 조금 달리자 작은 마을과 벌판 곳곳에 사원들이 있습니다.

언덕에 올라 능선이 아름다운 초원 위로 솟아있는 카일라스 정상을 찍기 위해 한 건물 위에 올라서니 뒤로는 마나사로바 호수가 보입니다. 

차를 달려 멈춰선 곳은 우뚝 솟은 바위산 앞 지우사(吉鳥寺).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원은 조용합니다. 사원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한 스님이 다가와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사원은 인도의 탄트라 불교를 처음 티벳에 전한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의 수행토굴이 있어 유명한 곳으로, 홍위병난 때 파괴됐던 것을 1985년에 복구했답니다.

사원 안에 들어가 무엇을 볼 것인지 몰라 주저하자 문을 닫아버립니다. 사원 주위를 돌며 주변 풍광을 살펴보면 좋다는데 날씨가 흐릿해 호수로 내려가자 사람들이 모여앉아 종교의식을 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온 힌두교 순례자 20여 명이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은데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진 찍어도 아무 반응이 없어 한참을 지켜보니 호숫물을 떠다가 머리에 뿌리는 등 진지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우주의 자궁’인 이 호수의 물로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기만 해도 오욕칠정(五欲七情)을 버릴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유명한 자이나교도였던 간디 인도 수상의 유해가 그의 유언에 따라 이 호수에 뿌려졌다고 하는데, 과연 인도 사람들이 이곳을 얼마나 신성시하는지 느끼게 하는 모습입니다. 

또 힌두교 신자들은 ‘브라흐만 신의 일곱 아들이 카일라스 산에서 수행을 한 후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아버지인 브라흐만 신이 이 호수를 만들었다. 또한 힌두교의 주신이 된 시바 신이 카일라스에서 내려와 이 호수에서 때때로 목욕하고 호숫가에서 수행한다’고 믿고 있다고 합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아침 일찍 마나사로바 호수에서 인도 힌두교 신자들이 모여 의식을 치르고 있다.
아침 일찍 마나사로바 호수에서 인도 힌두교 신자들이 모여 의식을 치르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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