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있는 4.3 유적지를 소개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4.3 유적지를 소개합니다
  • 현대성 기자
  • 승인 2016.04.01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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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의 아픔을 담고 있는 도내 4.3 유적지는 596곳에 달한다. 이 곳들을 모두 가 볼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평소 걸어다니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유적지에서 4.3 희생자들과 유족의 아픔을 함께 느껴보자.[편집자주]

▲관덕정과 관덕정 앞 광장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군중들이 기념식을 마치고 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6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관덕정 동쪽에 위치해 있던 제주경찰서 응원대의 발포는 6명의 주민을 희생시키며 도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이후 4.3발발의 도화선이 됐다.

▲제주항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제주 4.3당시 재판절차도 없이 수많은 제주도민들을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가 던져버린 수장에 대한 이야기들은 풍문으로만 떠돌고 있을 뿐 실상을 밝힐 자료는 아직 부족하다.

다만 당시 수장을 집행했던 선원과 유족들의 증언, 전국적인 상황을 대비해 그 사실이 진실에 가까움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수장 희생자의 시신은 찾을 길이 없다. 다만 물길을 따라 대마도로 갔을 것이라 생각하는 유족들이 가끔 대마도를 방문해 위령제를 지낼 뿐이다.

▲곤을동
70여 호로 이루어졌던 곤을동은 1949년 1월 4일 군인들에 의해 초토화되면서 복구되지 못한 잃어버린 마을이다.

불시에 들이닥친 토벌대로 인해 가옥이 전소되고 남성 10여 명이 희생됐으며, 토벌대는 살아남은 젊은 남자 대부분을 화북지서로 데리고 가 하룻밤을 지낸 뒤 다음날 당시 화북리 연대 밑 속칭 ‘모살불’이란 해안에서 이들을 총살했다.

▲성산포 서청중대 – 성산포초등학교 옛 건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성산농협 뒤에 위치한 성산포초등학교 옛 건물은 제주4.3 당시 서북청년단 특별중대가 사용하던 곳이다.

성산과 구좌를 관할하던 서북청년단 특별중대는 초등학교 건물 옆 감자창고를 사람들을 취조하고 매질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1948년 11월 28일, 서북청년단 특별중대는 18세 이상 80세 이하의 하도리 주민들을 도피 가족이라 하여 하루 동안 감자 창고에 감금시키시고 다음 날 터진목에서 이 중 20명을 총살시켰다.

▲하귀리 영모원
하귀리민들이 뜻을 모아 일제시기 위국절사와 제주4.3 희생자, 제주4.3 및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희생된 호국영령들을 한 곳에 모셔 추모하기로 결정하고 3년여의 준비 끝에 지은 곳이다. 

영모원은 관의 지원 없이 자생단체와 기관, 상가, 재일동포 등의 성금으로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낸 추모 공간이라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관음사
1949년 대규모 전투 속에서 관음사를 접수한 토벌대는 1949년 2월 12일 돌연 관음사에 불을 질러 건물을 전소시켰다.

관음사에 이들이 불을 놓는 순간 화창한 대낮인데도 갑자기 천둥 벼락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관음사 일대는 큰 소동이 벌어졌고 결국 관음사 방화사건은 중앙에도 알려져 문제가 됐다.

▲천제연폭포 주차장
천제연폭포가 위치한 서귀포시 중문동은 제주4.3 당시 수차례에 걸쳐 여러 곳에서 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천제연 도살장, 신사터, 자운당 등이다.

천제연폭포 주차장에서 남쪽으로 약 200m 정도 가면 선임교가 있고 선임교 동남쪽에 소나무 밭이 있는데, 이 곳에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도살장이 있었다.

선임교 도살장에서 1948년 12월 2일 월평동, 회수동, 예래동 주민 수십 명을 토벌대가 연행해 이 일대에서 학살했고 같은 해 12월 6일에도 회수동, 대포동, 예래동, 월평동 등 인근 마을 주민 36명을 이곳에서 학살했다.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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