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저서를 풀이한 책...사부(四部, 經·史·子·集)분류로 구성
조선의 저서를 풀이한 책...사부(四部, 經·史·子·集)분류로 구성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8.13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도서해제(朝鮮圖書解題)

1980년대에 필자가 사학과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은 게 하나있었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먼저 일본어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가 포함된 우리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고대사를 공부하려는 학생들도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우리나라 근대 역사학의 시작이 일제 강점기 일본인 학자들과 그들에게서 배운 우리 선학들이라는 점을 떠올리고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어찌 보면 필연이겠다 싶었다.

강점기 당시 세계에서 한국사 연구 분야에 자부심과 권위를 가진 건 우리가 아니라 일본 학자들이었다. 따라서 그 시기는 물론 해방 후 지속적으로 발표된 그들의 연구 성과는 식민사관에 경도된 부분 등의 문제점을 제외하고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질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단순히 발표된 연구 논문의 수량만을 따져서 그들의 연구 성과를 넘어선 것이 80년대였다. 그런 배경으로 인해 한 주제의 연구사를 정리할 때 그들의 연구 결과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문제는 비단 논문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강점기 시기 출판된 우리 역사와 관련된 상당히 많은 자료도 그렇고, 당시 선배들이 제일 많이 쓰던 한자사전 등 공구서도 거의 다 일본어로 된 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귀하고 값 비싼 원본을 구할 수 없어 보급판으로 영인되어 나온 자료나 사전을 보는 게 일상이었다.

이제 헌책방이 업이다 보니 종종 예전에 영인본으로 보았던 책의 원본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젠 자료적인 가치는 거의 없는 책들이지만, 여전히 귀한 놈들이라 사업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가지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선 30여 년 전에 느꼈던 그 당혹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한다.

엊그제 입수된 '조선도서해제(朝鮮圖書解題)'(1944)도 그런 경우이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에서 관리하던 규장각 도서 가운데 조선본 2795종을 해제해서 수록한 해제집이다. 1911년부터 정리를 시작하여 1915년에 먼저 1400여 종을 수록하여 간행하고, 후에 1300여 종을 추가하고 색인과 부록을 넣어 증보 간행한 것이 1919년이다. 이 1919년판을 1932년에 중간(重刊)했고, 우리 서점에 입수된 것은 이 중간본의 재판본이다.

이 해제집은 전통적인 사부(四部)분류법에 따라 책들을 사부(經·史·子·集)로 나누고 다시 43류(類)로 세분하여, 각 서명 밑에 책수, 편저자, 인본(印本)과 사본(寫本) 구별을 기록하고, 해당 도서의 해제와 편저자의 약력을 수록하고 있다.

이 해제집 이후에 한국학 도서의 종합적인 해제집이 나오지 못한 것을 반성하면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한국도서해제(韓國圖書解題)”를 간행한 것이 1971년이다. 무려 5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뭔가 새로 개발하거나 하면 일본의 전문가가 와서 보고 슬며시 웃으면서 돌아갔다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너희는 아직 멀었다’는 의미였단다. 물론 부족한 점이 많기에 우리에겐 동기부여가 된다.

내일이면 그들의 통치하에서 벗어난 지 꼭 75년이다. 여전히 그들의 머릿속엔 ‘식민지 조선’으로 기억되고 있는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