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을 다시 만난다
'제주4·3'을 다시 만난다
  • 박수진 기자
  • 승인 2016.03.3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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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68주기를 맞아 이를 다룬 책들이 재조명 받고 있다. 제주출신 작가들이 발간한 책들을 중심으로 ‘제주4·3’ 책들을 살펴보자.

<화산도>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인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이 4·3을 소재로 쓴 화산도는 1980년대 말 이호철·김석희 번역으로 실천문학사에서 다섯권으로 출간된 바 있다. 화산도는 원고지 2만2000장 분량에 달하고 20여 년에 걸친 집필 끝에 완성된 것이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1980년대 후반에 한국어로 옮겨진 바 있으나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 책의 진면목을 궁금해 했던 독자들의 오랜 기다린 끝에, 지난해 10월 최초로 완역판 ‘화산도’가 출간됐다.

화산도는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1948년 2월 말부터 이듬해인 1949년 6월 제주 빨치산들의 무장봉기가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의 해방직후 혼란스러운 정국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주요 무대는 제주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서울과 목포뿐만 아니라 오사카와 교토, 도쿄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

빨치산들의 무장투쟁 자금의 유입 경로, 재일동포들의 실상과 일본공산당과의 관계 등이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이방근은 독립 운동가였으나 전향을 약속하고 병보석으로 출옥한 인물로, 해방 후에도 친일파가 반공의 기치를 내걸고 득세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이방근은 북한의 공산주의 정권에 대해서도 새로운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는 세력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친일파 세력과 서북 청년단의 잔혹한 탄압에 맞서 저항하기 위해선 그들을 지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대와 달리 제주 빨치산의 무계획적이고 무모한 활동은 수많은 제주 민중을 희생시키고, 이방근은 더 깊은 허무와 절망감에 빠진다. 빨치산과 서북청년단, 친일파 경찰이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의 지옥도에서 이방근 역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친일파이자 제주 민중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 선 유달현과 정세용을 처단한 것이다.

이방근은 그들과 친척과 친구 사이였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은 타인을 죽이기 전에 자살한다”는 소신을 깨뜨린 이방근은 끝내 자살을 선택한다.

일각에 알려진 것과 달리 김석범의 화산도는 제주의 문제만을 다루지 않았으며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좇는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이 소설은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민중의 슬픈 역사를 애도하는 장중한 진혼곡이자, 야만적인 폭력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존엄 평화를 외치는 작품이다. 보고사. 1만3500원.

<순이삼촌>

순이삼촌은 제주도의 역사와 4·3사건 전후에 발생한 비극에 대해 끊임없이 천착하면서 문제작을 발표했던 제주 작가 현기영의 대표작이자 첫 소설집이다. 책에는 이념의 대립이 어떻게 왜곡되어 인간의 삶과 존엄성을 박탈하는지, 인간의 폭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극한에 이를 수 있는지를 치밀한 이야기 전개와 묘사를 통해 파헤친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1978년 창작과비평에 발표하면서 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킨 순이삼촌은  금기시되던 4·3사건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작가는 학살현장의 시쳇더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고통스런 내상을 안고 30년 동안을 살다가 자살한 ‘순이삼촌’의 삶을 되짚어간다. 이어 이 과정을 통해 참담했던 역사의 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간섭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4·3 당시 초토화된 마을과 부역, 폭력에 시달리는 주민들, 가족의 이산과 죽음 등이 처참하게 그려지는 '도령마루의 까마귀', 4·3의 거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개인의 운명을 당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복원하는 '해룡이야기', 어린 화자의 의식세계로 토벌대를 피해 입산한 아버지를 묘사한 등단작 '아버지' 등도 담겼다. 창비 1만2000원.

<한라산의 노을>

1991년 세상에 나온 4·3 장편소설, 제주 작가 한림화의 '한라산의 노을'이 현대판으로 재개정됐다. 소설은 1947년 관덕정 광장에서 벌어진 3·1운동기념식 시위부터 1949년 6월 인민무장대 총사령관인 이덕구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4·3 역사를 많은 사람과 사건들로 촘촘히 엮어내고 있다. 저자는 무려 10 여년에 걸친 현장 취재와 자료 조사를 진행하며 방대한 양의 소설을 완성했다. 1991년 출판사 한길사에서 3권으로 나눠서 출간한 이 소설은 출판사 장천이 700쪽짜리 책으로 한 데 묶었다.

소설은 4·3의 주요 얼개를 따라가면서 무장대의 아지트, 중산간마을, 해안마을을 숨가쁘게 오가고 수많은 제주의 민초들을 등장시킨다.  취재를 통한 개인의 기억과 자료 속의 사건들을 씨실과 날실로 삼아 촘촘히 엮어낸다. 파편의 역사는 이렇게 뼈와 살을 맞춰가며 점점 더 큰 소용돌이로 몰아치기 시작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이야기하며, 모두가 이 소설의 주인공임을 강조한다.

도서출판 장천은 “지금도 4·3은 우리 근, 현대사의 비극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사건의 전개와 당시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4·3을 알고 싶은 사람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책이 바로 이 소설”이라고 말했다. 도서출판 창천. 2만5000원,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제주4·3을 묻는 너에게’는 제주 시인 허영선이 지극히 쉬운 문체로, 말하듯이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4·3이야기를 둘려진다. 저자는 4·3의 발단과 전개, 그 끝나지 않은 역사를 섬 사람들에게 바짝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 몸짓 심지어 침묵까지도 담아냈다. 저자 역시 그들 중 한 명이기에 독자는 더 가슴 저미는 생생함을 느낄 것이다. 저자는 8년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출간되어 일본과 중국에서도 번역 출간된 ‘제주4·3’에 더하여 집단 학살의 증언과, 특히 역사의 혼돈 속에서 가장 피해를 입은 아이들과 여성들이 당한 고통을 증언과 함께 깊이 있게 다루었다. 또한 강요배 화백의 ‘4·3 연작’ 가운데 여러 작품이 들어 있어, 그날의 참혹함과 억울함을 생생하게 더해준다.

하지만 이 책은 그들의 목소리에만 의존해 쓰인 것은 아니다. 4·3은 역사이기에 해방 전후의 역사적 상황을 별면으로 붙이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더욱이 온 섬이 학살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제주도의 4·3유적지를 자분자분 동행하며 ‘그날’을 설명해주는 부록도 책 뒤쪽에 있다. 이를 알지 못하면 우리들은 학살터 위에서 골프를 치고, 기업 수련회를 열고, 신혼여행·효도관광·걷기여행을 하는 셈이다.‘내일’이 ‘오늘’, ‘어제’를 묻는다면, 우리는 주저함 없이 ‘4·3’을 들려줘야 한다. 서해문집.1만2900원.

 

 

박수진 기자  psj8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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