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7.1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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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동국대 영상대학원 부교수

최근에 제주를 안다는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이 ‘육지 것들’을 아냐는 말이다. 대표 제주어가 “맨도롱 또똣할 때 호르륵 드십서” 정도에서 ‘육지 것들’로 대체되는 것 같아 좀 안타깝다.

이 말은 단순 관광객이 아닌 제주에서 살아본 사람, 사는 사람 혹은 살았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고 거기에는 ‘육지 것들’로써 서운함이 묻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대학교부터 육지를 다녔으니 ‘완전 육지 것’이 다 됐다. 처음 ‘육지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섭섭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생각해 보게 됐다. 누가 ‘제주 것들’일까? 필자처럼 고향 떠난 지 30여 년 다 되가는 제주 출신도 ‘완전 육지 것’이 되니 ‘제주 것’이라면 제주에서 태어나고 생활터전을 잡고 죽을 때까지 사는 사람만을 의미할까? 그렇게 따지면 인구로는 35만 정도?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거기서 질문들이 다시 생긴다. ‘제주 것들’과 ‘육지 것들’ 중 누가 제주를 더 사랑할까? 제주를 사랑하는 ‘육지 것들’은 영원히 이방인인가? 꼭 생활터전만을 갖고 따질 게 아니라 제주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진짜 제주 사람 아닌가? 라는 의문들.

많은 유명인들이 있지만 필자가 최근에(뒤늦게) 발견한 제주를 정말 사랑하는 ‘육지 것들’이 있다.

우성 변시지 화백과 러시아의 소설가 박미하일이다. 아마 변시지 화백은 제주대학교 교수로도 재직했기에 많은 분들이 기억하리라. 그래서 변시지 화백은 ‘육지 것’이 아니라고 분류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분의 작품들을 보면 그는 분명 ‘육지 것’이다. 서귀포시 서흥동 변태윤의 자제로 6살에 일본으로 갔으니 ‘제주 것’일 수도 있지만 나이 50에야 제주를 다시 찾았으니 아마도 그는 임종 때까지 ‘육지 것’으로 살았을 가능성도 많다. 이런 이력 때문에 제대로 된 한국인으로 살기도 버거워 했으니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런데 23세에 일본에서 최고 화가로 인정받은 그를 제주는 얼마나 알아줬을까? 제주에서 그린 초기작을 보면 강렬한 화풍으로 슬픔과 외로움, 비애를 그리고 있다. 4·3의 아픔을 알고서는 검은 바다, 하얀 파도, 노란 땅을 그렸다. 그러다 그는 기어이 제주 바다, 제주 흙을 표현할 화풍을 찾았다. 바다도 노랗고 땅도 노란…. 노랗다기보다 황금똥색으로 제주를 그려냈다. 자신은 그 안에서 외롭게 지팡이를 짚으며 갈 데를 못 찾고 서성이는 나그네가 되고 철학자가 됐다.

그에게 제주는 그려낼 방법은 줬지만 그는 제주를 알지만 제주에서 그는 이방인, ‘육지 것’으로 남겨졌으리라 추측된다. 제주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필자는 변시지 화백을 1등으로 하겠다. 그를 끝내 ‘육지 것’으로 남긴 미안한 맘을 더해.

박미하일은 제주와 연고가 없다. 한말에 조부 가족이 러시아로 이주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타지키스탄에서 공부하고 현재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고려인 소설가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러시아어로 번역해 한국문학을 러시아에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소설 ‘헬렌의 시간’을 읽어보면 그의 남다른 제주 사랑을 알 수 있다.

떠도는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가 제주를 안식처 또는 집으로 느낀 것 같다. 제주에 관해 쓴 많은 작가들의 글들 중 그가 제주를 바라보는 눈은 특별하다. 그는 제주 섬에만 있을 법한 인간애와 자연 그리고 그것들이 어우러지는 자연 속의 환타지를 탄생시켰다. 제주에 평생 살면서도 보지도 느끼지도 꿈꾸지도 못 하는 아름다움을 그는 글과 그림으로 쓰고 그렸다. ‘헬렌의 시간’은 안식처인 제주에 바치는 그의 헌사인 셈이다. 필자는 박미하일 님 역시 제주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제주를 정말 사랑하는 ‘육지 것들’을 제주가 잘 안아줬으면 한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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