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밴 끈기로 전쟁터 같던 현장 버텼어요"
"몸에 밴 끈기로 전쟁터 같던 현장 버텼어요"
  • 정용기 기자
  • 승인 2020.06.2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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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주&제주인 (1)코로나 의료봉사단 김도연·황인영씨

제주인(濟州人)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는 도전과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왔다. 특히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도 제주인들은 불굴의 정신과 수눌음 정신으로 팬데믹 상황을 이겨내고 있다.

제주인들의 공동으로 갖고 있는 도전 정신과 어떤 어려움도 이겨는 개척 정신, 맞닥뜨린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수눌음 정신은 제주인의 DNA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빛을 내고 있다.

이와 함께 제주인의 강인한 DNA는 제주를 ‘글로벌 아일랜드’로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본지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이끌어 갈 제주인 정신을 조명하고 계승하기 위한 인물 발굴 프로젝트 ‘2020 제주&제주인’을 시작한다. 편집자주.
 

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진이 부족한 충남 지역 방역현장에 지난 3월 참여한 제주대학교병원 의료봉사단원들이 힘든 일정 속에서도 웃으며 업무에 임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진이 부족한 충남 지역 방역현장에 지난 3월 참여한 제주대학교병원 의료봉사단원들이 힘든 일정 속에서도 웃으며 업무에 임하고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전 국민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덕분에 챌린지’ 캠페인의 응원 메시지의 전달 대상으로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한 숨은 영웅들이 제주에 있다.

제주대학교병원 소속 김도연 팀장(49·여)과 황인영 간호사(28·여)가 주인공이다. 석 달여 전 코로나 감염 확산으로 전국에 의료진이 부족해지자 기꺼이 발 벗고 나선 이들이다.
 
둘은 제주대학교병원 코로나19 의료봉사단을 꾸려 지난 3월 22일 충청남도 천안으로 떠났다. 유럽발 입국자 임시 검사·격리 시설에 도착해 각각 선별 진료와 격리 관리 업무를 맡았다.
 
도내 의료진이 다른 지역으로 코로나19 의료 봉사를 떠난 것은 이들이 처음이었다.
 
당시 둘은 “환자가 있는 곳을 의료진이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가족 걱정에도 사명감에 기꺼이 떠나
처음에 김도연 팀장은 제주대병원 의료봉사단 파견이 과연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강원대병원 등 다른 지역 대학병원들이 코로나19 의료봉사단을 꾸려 파견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자 송병철 제주대병원장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자는 의지를 피력했고 김 팀장 등은 제주대병원 코로나19 의료봉사단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막내 딸 등 가족들이 코로나19 의료봉사단 파견을 걱정했지만 김 팀장의 사명감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가족이 걱정했지만 코로나가 확산되다 보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황인영 간호사도 코로나19 의료봉사단이 꾸려진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합류했다. 대학 재학 시절 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벌였던 경험을 떠올리며 기꺼이 자원했다.
 
황 간호사는 이번 의료봉사 당시 다른 단원들보다 방역 현장에 더 오래 머물렀다.
 
당초 파견됐던 충남 천안에서 대구로 건너간 후 환자들을 10일간 더 돌봤다. 대구에서 요양병원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확산되면서 의료진이 절대 부족했기 때문이다.
 
황 간호사는 “코호트 격리로 환자들이 통증을 호소해도 외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며 “약으로 통증을 견뎌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가장 힘든 점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대구 소재 요양병원으로 떠나는 황인영 간호사가 활짝 웃으며 손 인사를 하고 있다.
대구 소재 요양병원으로 떠나는 황인영 간호사가 활짝 웃으며 손 인사를 하고 있다.

■제주인 정신으로 코로나 방역에 앞장 
코로나19 방역 현장에 도착해보니 막막했다. 파견 첫날 의료장비나 약품 등이 전혀 정리되지 않았고 의료진 간 업무 배분조차 이뤄진 게 없어 모든 걸 하나하나 준비해야 했다.
 
더군다나 언제 해외 입국자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항시 대기 상태였다.
 
김 팀장의 몸에 밴 강한 자립심과 적응력이 빛을 발했다. 그는 리더십을 발휘해 의료 장비와 약품 등을 정리하고 선별 진료 후 발생한 폐기물 처리 등 업무 배분까지 지휘했다.
 
김 팀장은 “제주는 섬이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스스로 생활환경 등을 개척해나가는 정신이 뛰어난 것 같다”며 “제주인의 정신을 타고나 이어가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인은 자립심과 끈기, 강인한 정신을 갖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힘들고 피로한 상황이다. 제주인의 정신이 코로나 극복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소재 요양병원은 상황이 보다 심각했다.
 
황 간호사는 당시 현장을 떠올리며 마치 전쟁터 같았다고 회상했다.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요양병원 건물 전체를 통째로 봉쇄하는 ‘코호트 격리’가 이뤄졌다.
 
간호사는 6명뿐이었고 정보는 환자들의 이름과 질환, 복용하고 있는 약이 전부였다.
 
원래 요양병원에 환자 57명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30명만 남아있었다.
 
황 간호사는 제주여성의 강인한 생활력을 입증하듯 문제 상황의 실타래를 하나하나씩 풀어가며 맡은 일을 척척 해냈다. 그는 “요망지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고 전했다.
 
■“코로나19 극복에 동참…자랑스러워”
김 팀장과 황 간호사는 장기화하는 코로나19 사태를 반드시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의료진은 물론 국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 팀장은 “코로나19 방역 최일선 현장에 가보니 의료진과 정부의 노력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며 “코로나19 의료봉사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황 간호사는 “코로나19 사태 해결에 역할을 했다는 게 자랑스럽다”며 “언니와 여동생도 모두 간호사로 코로나19와 맞서 싸우고 있다.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신다”고 소개했다.
 
김 팀장과 황 간호사는 모두 환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며 명쾌한 직업관을 드러냈다.
 
김 팀장은 서귀포시 서귀동 출신으로 어릴 적 위인전 ‘나이팅게일’을 읽으며 간호사의 꿈을 키웠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나서기를 꺼리고 별로 말도 없었지만 꿈을 이루고 나서 병원에서 많은 환자들을 만나는 동안 어느새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뀐 자신을 발견했다.
 
김 팀장은 “간호사는 환자들에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먼저 물어보는 게 기본”이라며 “환자와 의사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간호사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서귀포시 성산읍 출신인 그는 말하길 좋아하고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반드시 답을 얻어야 직성이 풀렸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즐겼다.
 
황 간호사는 “환자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해주는 것이 간호사 본연의 임무”라며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게 간호사 업무를 하는 데 장점이 됐다”며 활짝 웃었다.

정용기 기자  brave@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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