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아픔에 더해진 동족상잔 비극...잊지 말아야”
“4·3 아픔에 더해진 동족상잔 비극...잊지 말아야”
  • 정용기 기자
  • 승인 2020.06.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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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6·25 전쟁 70주년]송치선 6.25참전 용사

 

“제주4·3의 아픔을 뒤로하고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의 전장으로 뛰어든 제주의 참전용사들과 그 역사를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70년전 체신(우체국) 공무원으로 일하던 21살의 ‘청년 송치선’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삶의 터전과 가족 등 모든 것을 제주에 남겨두고 해병대에 자원해 참전했다.

숨죽여 울어야만 했던 4·3의 아픔도 잠시, 청년 송치선처럼 전선으로 향한 제주 출신 6·25참전용사는 1만3000명에 달한다.

이제는 ‘백발의 용사’가 된 송치선옹(91)은 현재도 화염으로 휩싸였던 당시 상황을 생생히 설명한 후 “청년들이 잊어서는 안 될 역사”라며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송치선옹은 “1950년 6·25가 발발하기 몇 년 전부터 제주는 4·3으로 가슴 아픈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며 “도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학생, 선생님, 공무원 등 수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전선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동족끼리 서로 총을 겨눠야만 하는 게 통탄할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송치선옹은 체신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1950년 8월 21살의 나이에 신부를 홀로 두고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6·25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전투, 도솔산 전투, 김일성 고지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워 1952년 12월 22일 충무공무공훈장을 받았다.

또 제대 후 공무원으로 40년 근속해 1988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18년 5월부터는 6·25참전유공자회 제주도지부장을 맡고 있다.

송치선옹은 “전장에서 수많은 전우를 잃었고 휴전 후 세월이 지나면서 제주 출신 참전용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며 “대부분 90살이 넘은 생존 용사들은 제주에서 6·25 역사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잊혀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에서 4·3과 6·25는 맥을 같이하고 있어 역사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며 “그런데 도내 교육기관에서는 ‘6·25 바로알기 교육’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송치선옹은 “생존 참전용사 중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다. 보훈당국의 재정상황이 어렵겠지만 참전명예수당 확대나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 준하는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6·25참전유공자회 제주도지부에 따르면 도내 생존 6·25참전유공자회 회원은 1400여 명이다. 이들 대부분이 90세 안팎의 노인이다.

숙환으로 병원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도내엔 독립 형태의 보훈병원이 없다보니 치료, 진료를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6·25참전유공자회 제주도지부 측은 “해마다 150∼200명의 참전유공자회원이 눈을 감고 있다”며 “가족과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원해 전장으로 향했던 용사들을 위한 보훈, 복지사업의 확대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용기 기자  brave@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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