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단상
‘집’에 대한 단상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03.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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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철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폰지 게임(Ponzi game)’이라는 용어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개발 붐이 일기 시작하던 1920년, 이탈리아에서 보스턴으로 건너온 찰스 폰지(Charles K. Ponzi)의 사기수법에서 생긴 말이다.

처음에 그는 국제우편 쿠폰에 적용되는 환율 차이가 큰 점에 착안하여 고(高)수익을 제시하며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당시 은행이자가 연 5%에 불과하였는데도 45일만에 50% 수익을 보장한다는 것. 투자자들에게 약정수익을 돌려주자 입소문을 타면서 8개월 만에 투자자금이 2000만달러(2010년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2조2000억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실제로 폰지는 아무런 사업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뒤에 투자한 사람들의 돈을 받아 앞에 투자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다단계(피라미드) 방식이었던 것이다.

얼마가지 않아 의문이 제기되자 신규 투자는 사라지고 돈을 찾으려는 사람만 급속히 늘어나 사기행각도 끝이 났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1925년에도 사실상 늪지대를 ‘두 달 만에 두 배 수익’을 보장하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라고 속여 투자자를 모집하는 사기행각을 벌이기도 하였다.

지식정보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도 선진국에서조차 이처럼 끝이 불 보듯 뻔한 투자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수록 고수익 뒤에 항상 숨어 있는 고위험을 알지 못하고 일확천금을 쫓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요즘 제주도의 집값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10% 이상 상승하고 특히 지난해에는 18%나 급등하였다. 이를 반영하듯 도내 부동산 경매 낙찰가율이 무려 134%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난 5년간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신공항 등 개발 수요가 있으니 집값이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지적하였듯이, 집값 폭등의 주범은 실수요가 아니라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믿고 무조건 투자하는 가수요라는 점이다.

해마다 집을 새로 지어도 가수요가 40%에 이르렀고, 생활비도 빠듯한 중·저소득층조차 겁 없이 빚을 내서 집 사는 데 동참하고 있는 것은 정상적이라 보기 힘들다.

도내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이 전국 최고 수준인데 반해 가구당 소득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어 더욱 걱정스럽다.

이렇게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이 도민들에게는 마냥 반가울 리 없다.

자기 집을 가진 비중이 56%에 불과한데, 집값이 계속 오르면 주거비용이 늘어나 무주택 서민의 고충만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그동안 지역경제에 활력이 되었던 인구의 지속적인 유입과 유망기업들의 도내 이전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할 경우 폰지게임에서 보았듯이 그동안 누적된 위험을 ‘빚내어 막차 탄’ 도민이나 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제주특별자치도가 한편으론 주택 10만호 공급 계획을 내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맑은 날 우산을 준비하라’는 격언에 걸맞은 조치라고 생각한다.

과거 개발경제시대에는 ‘내 집’ 장만이 잦은 이사와 주인 눈치를 봐야 하는 설움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 ‘집’은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았듯이 ‘치유의 공간’, 가족·이웃 간의 ‘소통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집이 우리 경제를 갉아 먹는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며 치유의 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할 날을 기대해 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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