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여, 무엇을 지키려는가
보수여, 무엇을 지키려는가
  • 제주일보
  • 승인 2020.05.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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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연구원·논설위원

시대는 변한다.

변화에 적응하는 자 살아남을 것이요 변화를 거부하는 자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지상과제이고 문제는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하는 것일 뿐이다.

시대의 변화는 사람을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어떤 자는 변화의 와중에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기도 한다. 변화의 흐름을 느끼고 읽어내는 안목과 과감히 실천에 옮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변화에 올라타야 하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리고 어떤 속도로 변화에 적응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보수와 진보가 나뉠 수 있다.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가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되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속도로 적응해 나갈 것인가 하는 지점이다.

보수란 기존의 풍습이나 전통을 보전하며 지킨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말이다. 과거 없이 현재와 미래가 있을 수 없듯이 과거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문제는 모든 과거와 전통이 이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발굴되고 재해석돼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과거의 유산도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고 그 해석이 시대적 맥락에 맞지 않으면 대중적 호응을 얻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보수는 무턱대고 과거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 혼란스러운 변화의 흐름에 좌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나방처럼 미래로 질주하는 흐름에 오류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수와 진보는 시대 변화라는 같은 배에 올라탄 공동 운명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과거보다는 미래에 방점을 두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면 다른 하나는 과거의 지혜에 방점을 두고 변화보다는 안정에 주목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양자 모두 배의 전진을 부정하진 않는다.

한국의 보수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 어떤 전통은 살리고, 어떤 전통은 버릴 것인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후퇴가 아니라 도태가 있을 뿐이다.

보수를 표방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견해의 차가 있겠지만 한국의 전통적 보수는 반공을 기반으로 기득권 중심의 정책을 펼쳐왔다. 그것이 시대적 유효성을 가졌던 적이 있었음을 부정하진 않겠지만, 시대적 수명 또한 다했음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 해 질곡의 한 세기를 보낸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국권을 잃었고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았으며 다시 전쟁을 치렀고 그 후유증으로 허리가 잘려 있다.

그러다 보니 외세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 그들 눈치를 봐왔고 그들이 커 보였다.

분단의 영향으로 통일보다는 반공이 중시됐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효용을 다한 과거의 유물은 박물관 수장고에 넣어두고 이제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야 한다.

반공보다는 통일을, 대결보다는 평화를, 사대보다는 자주를, 자본의 자유보다는 시민의 자유를, 이것이 이 시대에 유효한 지상명제이다.

사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그리 멀지 않다. 조금 빨리 가느냐, 아니면 조금 천천히 가느냐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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