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내 담뿍 풍기는 집' 바람 담은 이야기
'흙내 담뿍 풍기는 집' 바람 담은 이야기
  • 제주일보
  • 승인 2020.05.2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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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새집'(열림원, 2001~2003)

예전에 잡지 수집의 어려움과 즐거움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다. 한 번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어느 헌책방에 가던지 빠진 호수를 찾느라 눈에 불을 밝히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다 모으기까지 무척 힘이 들기도 하지만 힘들었던 만큼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한 권도 빠짐없이 다 수집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어려움을 감수하기 싫어서 아쉬운 대로 창간호나 폐간호만 수집하는 경우도 많다. 저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책방에 수집된 창간호는 상당히 많지만 첫 호부터 마지막 호까지 완전하게 수집된 잡지는 두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다.

올해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어수선해서 책방 운영에는 타격이 컸지만, 잡지 수집으로만 따지자면 좋은 일이 많았다. 제법 많은 창간호들과 그 창간호가 포함된 초기 발행 잡지 시리즈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그 중 제일 큰 기쁨은 앞서 말한 그런 노력 없이 창간호부터 끝 호까지 한꺼번에 입수할 수 있었던 잡지였다.

그 책이 바로 창간호인 2001년 봄호부터 2003년 하지호(통권10호)까지 발행됐던 '디새집'(열림원)이다. 2003년 춘분호부터는 제호를 ‘흙으로 빚는 이야기’로 바꾼 이 잡지의 이름 풀이를 보면, 흙으로 만든 기와가 ‘디새’고 그 디새로 만든 집을 말하는 것이니 바로 ‘기와집’을 뜻하는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이란다. 아직 불에 굽지 않은 ‘날디새’의 풋풋함을 지니기 위해서 ‘흙으로 빚는 이야기’라는 부제를 덧붙이고, ‘세상의 모든 생명은 흙에서 비롯되며 그런 흙내 담뿍 풍기는 집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우리네 ‘땅에서 흙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입을 모아 흙으로 빚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고, ‘구석구석 사람의 손 냄새가 묻어 있는 그런 책’을 만들어서, 세월이 지나 다시 ‘꺼내보아도 갓 지은듯하지만 책 속에 숱한 이야기가 묻어 있는’ 그런 잡지를 만들고자 한 이들의 열정이 보이는 책이다.

이 책이 다른 잡지들과 차별화 되는 것은 우선 광고가 없다. 이 잡지를 ‘찾는 사람들이 편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란다. 상업광고가 난무하는 다른 잡지들과 달리 어수선한 게 없어 눈이 편안해서 좋지만, 책값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부작용은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박완서·이철수·이윤기 등 화려한 필진들의 글과 함께 잘 다듬어진 사진과 그림이 많다는 점이다. 책에서 양념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만의 또 다른 말하기의 방법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서란다. 화려한 컬러보다는 흑백 모노톤이 중심이 되어 담백한 이 책은 ‘덤덤한 것이 오래 간다’는 것에 충실한 잡지이기도 했다.

문득 한 잡지가 떠오른다. 모든 것이 또렷했던 그 잡지에 비교한다면, 이 책은 시대가 낳은 파스텔톤 '뿌리깊은 나무'라고나 할까. 그래도 좋은 잡지다. 다만 지금은 볼 수 없는 ‘지붕에 풀이 난 망한 집’이 된 게 아쉬울 뿐이다.

창간호에는 ‘제주 해녀 할망 고씨’(김명아), ‘제주도 당신상’(진성기), ‘제주 큰 심방 안사인’(김수남) 등 모두 세 꼭지의 제주 관련 글이 실려 있고, 2001년 가을호에도 ‘제주의 든든한 마을 지킴이, 거욱대’(편집부)가 수록돼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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