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의 행복
소소한 일상의 행복
  • 제주일보
  • 승인 2020.05.1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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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배 전 제주일보 논설고문·논설위원

지난해 12월에 거의 10시간에 걸친 심장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두꺼워진 판막을 돼지판막으로 교체하고 심장대동맥을 잘라서 잇고 막힌 관상동맥을 우회시키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받기 전만 해도 나만한 강철 체력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이 60대 중반에 200울트라 마라톤과 풀코스 마라톤을 10여 회 완주할 정도였으니 체력과 심장만큼은 늘 자신해오던 터였다.

그런데 2년여 전부터 빨리 뛰거나 가파른 오름을 오를 때면 호흡이 가빴다. 의사로부터 심장판막이 정상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미국과 캐나다 여행을 다녀오는 만용도 부렸다.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병원에 갔더니 선천성 심장 기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동안 열심한 운동 덕분에 별 증상을 못 느끼다가 나이가 들면서 드러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가슴뼈를 30가르고 배꼽 위 세 군데에 구멍을 내어 배액관을 연결했다.

20여 일 입원하고 있는 동안 느꼈던 것은 소소한 일상에 대한 행복이었다. 그것들은 평소 아주 당연한 게 여겼던 것들이었다. 수술 후 가장 큰 고역은 재채기와 기침이었다. 재채기를 한번 하려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한 발짝을 옮기는 것도 먹는 일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했다. 회복 과정을 거치면서 알게 된 것은 무심코 보냈던 일상들이 내겐 큰 행복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여명을 뚫고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볼 수 있다는 것과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 건강한 두 다리와 양 팔이 있다는 것, 커피향이 가득한 카페에서 한 잔의 차를 즐길 수 있는 여유 등은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들이었다.

그것들은 그냥 지나쳤을 그리고 늘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어떤 이는 나무 젓가락이 깔끔하게 떼어질 때, 월급이 꼬박꼬박 계좌로 들어올 때, 하루 일과를 끝내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 때, 주차장에서 딱 한 자리를 발견했을 때,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등이 일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온 지구를 감염시켰다. 불과 4개월 만에 460만여 명에 가까운 사람이 감염됐고 31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의료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미국에서도 140만여 명이 넘는 확진자와 9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다가오는 세상은 코로나19 이전(B.C)과 이후(A.C)로 나뉘게 된다고 한다. 모든 일상도 코로나19 발병으로 달라졌다. 학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개학이 장기간 연기됐고 여행이 금지됐으며 다중이 모이는 모임도 줄어 들었다.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지는 시기였다. 코로나19 이전의 생활로 완전히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빠르게 극복해나갈 것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북극 얼음 땅에서 친환경에너지 나라로 탈바꿈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에 랭크되고 있는 섬나라 아이슬란드에서는 행복을 묻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행복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왜 행복한지 생각해본 적이 없을 만큼 행복이 보장된 나라이다. 그렇다고 그곳 사람들은 무슨 거창한 것을 행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단단한 혈연관계, 끈끈한 연대, 깨끗한 환경, 부담 없는 학업, 낮은 범죄율, 넉넉한 일자리와 급여, 확실한 남녀평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들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싸워서 투쟁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이슬란드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오늘이 바로 기적이며 우리가 그토록 갈구했던 내 인생의 목표이자 희망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중하지 않은 물건들을 버리듯이 오늘의 소소한 행복을 쉽게 지워버리고 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연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코로나19가 그것들을 깨우쳐 준 것은 아닐까.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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