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오한다는 일
각오한다는 일
  • 제주일보
  • 승인 2020.05.1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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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기대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 게 아니다. 자신의 각오에 대한 신뢰다.

믿지 않는 일이 싸구려 허무주의가 아니라는 건 그런 것이다. 국가에 기대지 않는 각오. 거기서부터 전혀 새로운 국가에 대해 확신이 생기는 게 아닌가 한다.

돈을 은행에 맡기고 의지하고 믿는 시대가 아니다. 연금도 꼭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가 해준다는 편한 맘으로 있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원하지 않는 무차별 범죄가 어지럽게 일어나는 시대다. 가족, 가정, 부부 인맥 모든 것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는 각오가 필요하다.

고령자에게 더없이 친절한 사회는 없다고 각오해야 한다. 노인은 젊은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걸 각오하고 거기서부터 생존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건강, 그런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포기하자. 전문 의사라고는 하지만 모두 맡길 순 없다. 입원한 환자는 갇혀있는 사람이다 라는 각오가 필요하다.

유산을 남기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난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우정도 돈이 섞이면 비뚤어지게 된다.

무상의 선의는 쉽게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경계당하는 때도 있다. 숨겨진 선행도 그것에 대한 선한 의도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선의가 악의로 변해 버리는 경우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한 때 긍정의 사고가 떠들썩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웃는 얼굴로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고 병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다.

부처는 사후의 세계와 영()의 세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만 이 괴로움 많은 현실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친 사람이다.

지금이야말로 각오를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포기한다는 것은 내던져 버린다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것. 기대감이나 불안 같은 것에 눈을 돌리지 않고 사실을 정면에서 받아들이는 일이다. 포기함으로써 절망의 허망함을 보게 된다.

노신은 말했다. 절망도 희망도 똑같이 인간이 갖는 기대감이라고. 그 두 개로부터 해방되는 눈만이 밝음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고 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 주길 바란다. 국가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최후에 국가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각오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나이 들수록 각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지는 요즘 시대가 됐다.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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