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서 문둥병과 흑사병을 떠올리다
코로나에서 문둥병과 흑사병을 떠올리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5.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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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 사단법인 질토래비 이사장

‘집콕’하는 날이 많으니 보고 읽을거리도 많은가 보다. 

대구·경북에 코로나19가 창궐하니 전국 의료인들이 그곳으로 향했다. 코로나가 잦아든 지금, 의료인 연대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위기탈출의 두 축이 됐다고 평한다. 

경험이 소중한 자원이듯 사스와 메르스 등을 겪으면서 쌓은 보건행정도 큰 몫을 했다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집단 기도로 난국을 극복하려는 일부 성직자의 행위에서 카뮈의 ‘La Peste’(흑사병)을 떠올렸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흑사병은 의사 리외를 중심으로 모여든 의료인과 시민 연대가 곧 세상의 구원임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소설이다. 소설은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고 구원은 과거에서 얻어지기도 한다. 

위기 속에 숨겨진 기회를 찾아야 할 때다. 코로나19 선방에서 보듯 한국은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의료기술과 의료행정의 보유국이다. 이러한 자부심과 함께 코로나19 치유 백신 개발의 염원을 담아 오래전 제주에서 문둥병을 치료했던 실제적 이야기를 공유해 보자.

겨울 바다에 잠수하는 사람들을 처연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전복을 밥상에 올리지 말라고 엄명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1443년 12월에서 1445년 12월까지 2년간 제주목사로 재직한 기건이다. 당시 제주에는 문둥병인 나병이 창궐해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다음은 세종대왕이 읽은 제주의 상황이다. ‘본주와 정의·대정에 나병이 유행하여 병에 걸린 자가 있으면 전염되는 것을 우려하여 바닷가 사람 없는 곳에 버리므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벼랑에서 떨어져 생명을 끊으니 참으로 불쌍합니다.’

나병이 번지자 기건 목사는 주변의 돌담으로 움막집을 지어 한센병 전문입원시설인 구질막(救疾幕)을 세웠다. 

그리고 제주 산야에서 나는 고삼이란 식물의 뿌리로 달인 물을 마시게 하고 남녀를 구별해 수용하고 양식과 약품 등을 공급하는 등 체계적인 진료와 관리에 들어갔다. 

나병치료집단수용시설인 구질막은 몰래물인 사수동에 있었다 한다. 도두동 해안도로 하수종말처리장 바다쪽 동산을 구질막 동산 또는 병막이 모루라 불리는데 이곳에는 다음의 내용을 담은 구질막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기건(奇虔) 목사가 구질막을 설치하고 나환자를 치료했던 터로 알려졌다. 1445년 이곳을 순시하던 기목사는 민가에서 쫓겨나 바위틈에서 신음하는 나환자들을 발견했다. 즉시 이곳에 구질막을 세우고 고삼원(苦蔘元)을 비롯한 약품, 양식, 의류 등을 지급하고 의생과 중을 배치시켜 치료받도록 하였다. 그 뒤로 이 일대를 병막이마루라 하며 바닷가 샘을 용다리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병은 한의학에서는 가라, 풍병, 대풍라라 했고 천형병(天刑病)으로도 불리는 문둥병 환자를 제주도에서는 ‘용다리’라 불렀다. 나병에 걸리면 비록 부모처자라 할지라도 서로 전염될 것을 염려해 환자를 사람이 없는 곳으로 옮겨 스스로 죽기를 기다렸던 시절이었다. 

기건 목사가 순행차 관내를 돌다가 해변 암벽 밑에서 신음하는 나환자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바로 즉시 목사는 근처에 구질막을 꾸미고 나환자 100여 명에게 고삼원을 복용시키고 바닷물로 목욕하게 하니 태반이 치료됐다고 전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눈에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고 공장이 멈추니 대자연이 살아나고 있단다. 인도에서는 매연으로 뒤덮였던 하늘이 맑아지고 이탈리아 베니스에는 물고기가 돌아오고 치유되는 자연을 보는 사람의 기분도 더불어 나아지고 있단다. 

이렇듯 대자연은 코로나19와의 결별이 아닌 상생을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소설 흑사병의 마지막 대목이다. 

인간들 속에는 경멸할 것보다는 찬탄할 것이 더 많이 있다. 그리고 페스트는 결코 죽지 않는다. 항상 경계하고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러스는 어디엔가 숨어서 다시 세상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을 게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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