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자긍심
코로나19와 자긍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4.2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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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수 시인·문학박사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선진국 시민이라는 자긍심을 느꼈다는 분들이 전 국민의 65%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우리가 부러워했던 서구 선진국이 부러워하는 코로나19 대응 모범국이 됐다는 현실이 우리 국민의 자긍심을 북돋워 줬기 때문이다. 

자긍심이라는 말만큼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인 말이 있을까. 자긍심은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자랑스러운 자신’은 개인의 가치와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가치가 모두 충족됐을 때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자랑스러운 자질을 갖춰야 하겠지만 집단적인 가치의 상승이 겸비돼야 한다. 

아직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우리 국민은 그런 자긍심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것은 그동안의 우리 역사가 증명한다. 우리 역사는 민초(民草)의 역사라고 할 만큼 민초의 역할에 의지한 바가 크다.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진정한 영웅이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러한 영웅 뒤에서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주목하게 된다. 우리 역사서에 등장하는 영웅 뒤에는 그 영웅을 탄생시킨 민초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도 그렇다. 뛰어난 리더십과 함께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에서 각종 기부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질서와 규칙을 지켜나가는 시민 등의 단결된 힘이 없었다면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을까. 

김수영 시인은 이러한  민초의 힘과 생명력을 ‘풀’에 의탁해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라는 절창으로 노래했다.

각종 국난 중에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희생한 민초가 없었다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등 외국의 유명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그 사회의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똑똑하고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에 솔선수범 참전해서 기꺼이 희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에 전쟁이 터지자 고국으로 돌아가 참전하려는 유대인들 때문에 이스라엘행 비행기가 마비됐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세. 그것은 집단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명문대를 나오고 명문 가문을 자처하면서 거대한 부를 축적해 떵떵거리며 살면서도 존경을 받지 못 하거나 욕을 먹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희생’을 실천하지 못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사정은 국제질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세계인의 존경을 받으려면 그에 합당한 ‘희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희생’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확산되면서 진정한 우방국이 어디이고 어느 나라 시스템이 선진화된 시스템인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힘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희생’ 정신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나’보다 ‘나보다 더 아픈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려고 애쓰고 정부는 우리의 노하우와 의료장비들을 나눠주며 국제적인 희생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입장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국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리더십으로 한국인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자긍심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자긍심은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정신적 가치다. 그러므로 자긍심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타인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도 자신을 희생한 이후에야 민초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이러한 문화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추구하는 희생 유전자 말이다. 

한류라는 세계적 흐름은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적이 아니라 5000여 년의 역사 동안 우리가 가꿔온 문화 유전자의 힘 덕분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긍심을 누릴 자격이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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