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시간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단 한 시간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0.04.1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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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과 서경석이 진행하는 MBC라디오 ‘여성시대’에는 눈물과 감동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편지’들이 자주 소개된다.
그저께 토요일 아침. 산에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우연히 들은 70대 초반의 시각장애 16년차 할아버지의 얘기도 그랬다. 50대에 시각을 잃은 이 할아버지는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편지로 썼다.
얼굴을 본 적이 없는 며느리와 사위도 그렇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 얼굴이 보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은 천년만년 보고 또 보리라고 하는데 나는 1년도 아니고 하루만이라도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사연이다.
이 사연이 가슴을 울리는 것은 우리가 당연한 일로 누리는 볼 수 있는 자유가 어떤 이에게는 꿈도 꾸지 못 할 일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는 때문이다.

▲사람들은 건강이 소중한 자유임을 모르고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찬란한 햇살을 볼 수 있고 산에 가는 길에 만난 새소리에 심취하며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편지는 그게 아니란다.  그것은 대단한 은혜요, 기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선천적 장애성 때문인지 한계 때문인지 볼 수 있는 자유가 기적이었음을 깨달을 때는 이미 늦는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나 장애인이고 장애인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지금 장애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당연한 것을 기적으로 바라고 살고 건강한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하는 일들을 아주 힘겹게 감당해야 하고 평생 열망하며 살지만 특이하거나 특수한 사람이 아니다. 그 중에는 잠시라도 눈을 떠서 보기를 원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이 있고 단 한 번만이라도 듣기를 원하는 청각장애인들도 있다.

▲오늘(20일)은 40회째 맞는 장애인의 날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기념행사가 취소됐지만 장애인과 장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됐으면 한다.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인구 대비 장애인 출현율은 그 나라 국민의 10%라고 한다. 그 중 90%가 후천적 장애인으로 선천적 장애보다 훨씬 많다. 우리나라 장애인 수는 258만5876명(2018년 보건복지부)으로 전체 인구 대비 5% 정도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추산보다 비율이 낮은 것은 장애 분류를 좁게 보는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은 에이즈나 각종 암 등도 장애로 분류된다. 장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 원해서 장애인이 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산업재해나 안전사고, 교통사고 등을 당하면 순식간에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가 있다. 우리가 장애를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일상으로 끌어안아야 할 이유다.

▲이제 우리 사회도 많이 변했다.
앞을 보지 못 하는 시각장애인을 보면 사람들이 다가가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물어본다. 무슨 구경거리나 된다고 멀뚱멀뚱 바라보거나 혀를 차던 일은 옛날이다. 또 스마트폰 기술의 발전으로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이 높아졌고 활동 지원·근로지원처럼 항상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어디든 갈 수 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사회가 됐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 손주들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어찌하랴.
할아버지 음성 편지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같이 사는 공동체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의 눈’을 크게 떠야 할 때라고.
그리고 그리운 얼굴들을 많이 보고, 또 보리라고.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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