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심는 삼춘, 고맙수다
꽃을 심는 삼춘, 고맙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4.1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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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오름을 걷다보면 복수초를 비롯한 노루귀 할미꽃, 제비꽃들을 만날 수 있다. 마당엔 잔디보다 먼저 앙증맞은 봄까치꽃이 고개를 내밀었다. 노란 유채꽃도 한껏 계절을 뽐내고 있고, 만개한 가로수 벚꽃도 거리를 화사하게 장식하고 있다. 나의 봄은 이렇게 꽃으로부터 온다. 봄꽃들을 보며 봄을 품어본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봄은 얼어버렸다. 예전 같으면 봄맞이 꽃구경 나들이 인파로 활기가 넘쳐야 할 곳들이 적막하기까지 하다. 매일 매일 들려오는 확진자수, 사망자수 소식에 두려움이 있다가도 고생하는 의료진들과 그들을 격려하는 사랑 이야기를 접하면 가슴이 찡하다. 코로나19가 트랙터에 의해 쓰러지는 유채꽃처럼 우리의 봄을 와르르 무너뜨렸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피워내는 사랑꽃 희망꽃이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있음을 본다.

어느 날 집 앞길 울타리 화단에 노란 금잔화가 띄엄띄엄 심어져 있는 걸 봤다. 누가 심었지? 앞집에서 심었나 했는데 아니다. 옆집도 아니다. 며칠이 지나도 금잔화는 어수선한 화단에서 방긋 방긋 인사를 한다. 꽃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긴 하나 누가 심었는지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가난한 총각을 위해 몰래 밥상을 차려놓았던 우렁각시가 생각났다. 총각처럼 숨어서 망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온갖 상상으로 꽃 심은 사람을 추측해본다. 퍼뜩 성당의 한 자매님이 떠올랐다. 그 자매님은 동네 빈 터에 꽃을 심는 일을 자주 한다. 집 주변의 빈 터뿐만 아니라 성당에도 심고 동네 파출소에도 꽃을 심었다. 설마 그 자매님이 여기까지 와서 심었을까?

장보고 들어오는 날 궁금증이 풀렸다. 전동 휠체어에 탄 노인이 삼다수 병으로 꽃에 물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휠체어 앞에는 물을 여러병 싣고 있었고 호미도 있었다. 이 분이 꽃을 심었고 계속 물주며 보살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고, 삼춘, 삼춘이 꽃 심었구나 예. 몸도 불편한디 어떵허영 여기까지 왕 꽃을 심었수가게. 잘도 고맙수다.”

노인은 아랫동네에 살고 있고 나이는 88세란다. 6·25 참전 때 몸을 다쳤지만 80세까지는 바다에 나가서 일을 했다고 하셨다. 이제 늙어서 힘든 일은 할 수 없으니 집에 있는 꽃을 동네에 심고 있다고 하셨다. 휠체어 옆에 흙 묻은 지팡이 하나가 묵묵히 서있다.

얼른 집에 와서 두유와 초코파이를 가져다 드리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며칠 후 그분이 다시 오셨다. 이번에는 울타리 장미가 오래돼 윗부분을 잘라 가지심기를 해야 꽃을 피울 수 있단다. 자세히 보니 아래 굵은 가지는 하얗고 그 위는 초록이다. 장미 윗가지를 잘라 쇠막대로 땅을 깊게 박은 다음 그 자리에 자른 장미를 심는다. 불편한 몸으로 하려니 힘들어 보였지만, 말릴 수는 없었다. 다 심고 나서 물을 잘 주라는 부탁을 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물을 잘 주며 가꾸겠노라고 말씀 드렸다. 나는 오늘 코로나19로 애쓰는 의료진만큼이나 아름다운 노인의 뒷모습을 보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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