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祭)에서 한자(漢字) 서핑(surfing)
제(祭)에서 한자(漢字) 서핑(surfing)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4.1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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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전 중등교장·칼럼니스트

“제사 제(祭)를 써 보거라.”

초등 4학년 때(1959), 이웃집 제삿날 저녁. 친척 할아버지가 떠보는 듯이 말씀하셨다. ‘제사 제(祭)를 쓸 줄 모르며, 제사 떡 축내러 다니느냐?’ 이런 느낌이 번뜩 들었다. 느닷없는 시험 문제(?)에 떡으로 가는 손이 떨린다. 한자(漢字)로는 성명 석자와 ‘하도국민학교’ 정도가 전부이었다. 이나마 맏아들 기대에 아버지가 일찍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초등 4학년 사회교과서에 ‘국제사회(國際社會)’ 단원이 있었다. 그 당시는 한자가 병기(倂記) 되었었다. 한국전쟁 후 국제연합의 기능을 가르치기 위하여 실린 것 같다. 

떡 쟁반으로 가던 집게손가락이 마루멍석 위에 받아쓰기 하듯이 ‘제(際 사이 제)’를 썼다. 어쩌랴! ‘제’에 대한 한자는 아는 게 그것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그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하신다.

훗날 들었는데, 그 할아버지도 천자문을 떼지 못하셨다나. ‘좌부방(阝)을 떼면 제(祭)이니라.’ 채점 결과가 없었다. 출제자나 수험생이나 제(祭)와 제(際)를 구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틀리거나 말거나 떡이나 먹고 보자. ‘당신과 나 사이(際)에 이 떡이 없었다면.’ 이 대중가요는 세월이 한참 지나서 나왔다.

“아버지, 이것(顯)은 어떤 글자예요?” 

선친(先親)은 다섯 형제, 4·3학살에서 혼자 남으셨다. 아버지의 당질(堂姪) 어린이들까지 함께 가셨다. 남겨진 것은 수많은 제사(祭祀). 지방(紙榜)을 쓰실 때마다, ‘현(顯)’으로 시작하신다. ‘만일에 내가 지방을 써야 한다면….’ 옆에서 보던 맏아이는 이런 걱정이 슬쩍 들게 되었던 것이다. 물음에 설명을 하시면서, ‘우리 집 지방을 쓸 줄 알면, 어디에서나 지방을 쓸 수 있다.’ 

‘현(顯)’이란 무엇일까? 

기도이다. 말씀드려(曰왈) 분향(焚香)하오니, 향연(香煙) 오라기들(糸糸) 타고 내려와 주시옵소서(曰+糸糸→㬎현). 저희 머리(頁혈) 위로 내려와 주시옵소서(㬎+頁→顯). 선친 기일(忌日)엔 늙어(耂)돌아가셨다 해도 하늘·땅의 공교(丂)인가, 아버지 생각(耂+丂→考)이 현(顯)아래 자리한다. 

비(雨)는 땅의 젖줄(而). ‘사람(亻)이 비(雨) 닮으려는 길’이 유도(儒道)이며, 하늘이 땅을 적시듯 젖을 먹이는 것이 유(孺)이다. 어떤 벼슬보다 높은 것이 어머니의 젖퉁이이다. 이날만은 꼭 수저(匕비; 匙箸시저)를 올리고 싶다. 생전에는 쓸 수 없는 글자(女+比→妣)로 갈음하며, 어머니 가슴이 떠오른다.

백중숙계(伯仲叔季)는 네 형제 중 맏이, 둘째, 셋째, 그리고 막내이다. 이렇게 형제들은 또(又우) 있으니, 아저씨(尗+又→叔)이다. 숙(叔)은 콩(菽숙)과 섞여 쓸 때 있으니, 백중숙계를 모르면 숙맥(菽麥)소리 듣는다. 

삶이란 어쩌면 서핑(surfing)이 아닐까? 세파(世波)를 타고 간다. 사람은 물고기가 아니다. 물에서는 살 수 없다. 궁극에는 뭍에 닿아, 뭍에서 살기 위한 것이 파도타기이다. ‘몰래 땅 짚기’도 아니 된다. 물도 알고 뭍도 그걸 느낀다. ‘十目所視(십목소시)열 눈이 보고 있고’, ‘十手所指(십수소지)열 손이 손가락질 한다.’ (大學)

제(祭)는 올려놓은 고기(月)를 살핌(示)이다. 집(宀)에서 제 지내듯(宀+祭→察찰) 살라. 검찰(檢察)·경찰(警察)도 제향(祭香)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필 일이다. 

제(祭)의 바탕은 엄(嚴)이다. 그 위에 위엄각(威儼恪; 엄하고·두려워하고·삼가는 마음)이 진설(陳設) 된다. (祭禮)

제(祭)커녕 철도 모르는 풋세상,
엄(嚴) 차린 제상(祭床) 위로
현(㬎)을 피워 올리는   
4·3학살 달(月)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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